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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와 요동반도

발해가 요동반도를 차지하지 못하였다는 주장들이 있다. 한번 그 근거가 되는 것들부터 살펴보고 넘어가보자. 가탐(賈耽)의 지리 기록가탐은 8세기 후반에 활동한 당나라의 관료였다. 고구려 유민인 왕사례(王思禮)와도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관료로서의 업적보다는 개인적으로 지리학을 무척 좋아해서 관련된 지리책과 지도까지 편찬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저작은 없지만 다행히 의 지리지에 그의 글이 다수 남아 있다. 그렇게 우연찮게 발해에 대한 지리 정보도 그의 글을 통해 일부가 전해진다. 등주(登州, 산동반도 동북쪽 끝)에서 동북쪽 바닷길로 압록강 하구에 이른다. 배를 타고 1백여 리를 가서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리를 거슬러 올라가 박작구(泊勺口)에 도착하니 발해의..

백미(白眉)의 동생이자 읍참(泣斬)의 주인공 마속(馬謖)

걸출한 재능이 있었고 군사 전략에 밝았지만, 말보다 실제가 부풀려진 인물 어떤 인물이 사자성어 속 주인공이 되거나 혹은 보통명사화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주 드물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긴 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백미(白眉)라는 고사의 형제들이 바로 그 사례이다. 백미는 글자 그대로는 단순히 ‘흰 눈썹’이라는 뜻인데, 오늘날 사전적 정의는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 배경은 이렇다. 당시 양양군 의성현(宜城縣)에서는 마(馬)씨 집안의 다섯 형제가 재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그 중에서도 눈썹에 흰 털이 나 있던 마량(馬良, Mǎ Liáng, 187~222)이 제일이라고 해서 흔히들 ‘백미’가 바로 그 중 ..

시대를 앞서간 명의 화타(華佗)

화타는 의술과 약처방에 있어 정통했다. 《삼국지》에서 기이한 인물을 뽑아본다면 물론 여럿 있지만 신비한 의술로 정사에 기록을 남긴 화타(華佗, ?~208)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에 믿기 힘든 일화들이 많다보니 과연 역사상 실존인물인지 확신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오늘날 의사라는 직업적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였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놀랍기 그지없는 그의 활약상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그는 약 처방에 정통했다고 한다. 병을 치료하려고 약을 달일 경우 불과 몇 종류의 약재만 합쳐 끓였으며, 저울도 쓰지 않고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사용하였다. 보통은 이렇게 끓인 약을 통해 병을 치료하였다. 뜸을 뜨는 경우에도 겨우 한두 곳만 정확히 예닐곱 번 뜸을..

탐라, 제주(濟州)의 시작

오늘날 제주(濟州)는 한국의 내륙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비행기를 통해 방문하고 있는 제주, 연간 1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수가 말해주듯 등락은 있을지언정 제주는 꾸준히 애정과 관심을 받아오는 최고의 여행지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제주가 아닌 이보다 2천 년 전의 탐라(耽羅)는 어떠했을까? 아쉽게도 여러 유물들을 제외하면 2천 년 전에는 탐라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는 게 없다. 3세기의 한반도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서인 중국 정사 에는 마한(馬韓) 서쪽의 바다에 주호(州胡)라는 이름의 섬나라가 있었다고 나와 있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제주와 같은 곳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가장 확실하게 제주, 그 당시 탐라의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백제와의 ..

기이한 천재 혹은 성실한 모범생, 제갈량(諸葛亮)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큰 인물이었으나, 다만 임기응변의 지략이 부족하였다. 삼국지 최고의 천재를 꼽는다면 누구나 다들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는 사실 소설 《삼국지연의》의 탓이 크다. 역사적 인물이 아닌 소설 속 캐릭터로서의 제갈량은 기묘한 책략과 온갖 술수까지 다를 줄 아는 만능의 귀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 묘사의 수준이 오늘날 합리성의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면 너무도 심하게 과장되어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오죽하였으면 우리보다 훨씬 앞 세대인 조선시대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도 《삼국지연의》를 읽다가 칠종칠금과 축융부인의 일화를 보고는 너무 허황되어 책을 던져버렸었다고 하였을까. 물론 《삼국지연의》 자체가 선과 악에 대한 인..

어려서부터 신동이었던 제갈각(諸葛恪)

어려서는 천재, 그러나 커서는…? 제갈각(諸葛恪, 203~253)은 그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인재들이 활약했던 삼국지의 시대에서도 총명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던 제갈씨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기도위로 임명되어 관직에 나아갔는데, 출세도 빨라서 221년에 오나라의 손권이 맏아들 손등(孫登, 209~241)을 왕태자로 삼을 당시 우수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그를 수행토록 하였을 때 그 중 한 명으로 뽑힌 이가 바로 제갈각이었다. 둘의 나이 차는 불과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아서 그랬는지 같이 마차를 타기도 하고 침대에서 함께 잠들기도 하는 등 무척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229년에 손권이 황제로 등극할 때에 손등이 다시 황태자가 되었고, 이때에도 그를 보좌하는 핵심 4인방 중 한 명이..

조조의 천재 아들, 조충(曹沖)

그 아이가 죽은 것은 나에게는 불행이지만 너희에게는 행운이겠구나. 조조(曹操)는 슬하에 아들만 25명이나 되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 제국을 건국한 조비(曹丕)와 그와 치열한 왕위 경쟁을 벌였던 동생 조식(曹植)이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동복 형제였던 조창(曹彰)도 장군으로서 명성을 떨쳤고, 또 조조가 장수(張繡)를 토벌하러 갔을 당시 아버지를 수행하던 중 대신 목숨을 잃었던 조앙(曹昻)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 그 많은 자식들 중 가장 똑똑했던 아들은 누구였을까? 학문적으로는 그 수준이 조식에 가까웠다는 조곤(曹袞)도 있긴 하나, 아무래도 “천재 요절”이라는 신화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인물로는 조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조충(曹沖, 196~..

제갈량의 그림자에 가려진 방통(龐統)

인물 평가를 좋아했고 학문과 책략에서 뛰어났다 와룡봉추(臥龍鳳雛),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를 일컫는 말로 흔히 세상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뛰어난 인재를 뜻한다. 이는 삼국지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각각 제갈량과 방통(龐統, 179~214)을 가리킨다. 소설 상에서는 특히 주인공격인 유비를 중심으로 띄워주기 위해 양대 천재를 거느린다는 컨셉의 소재로 활용되었지만, 소설에서든 실제 역사에서든 제갈량이라는 강한 빛에 가려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존재로 여겨진다. 제갈량과 두 살 터울인 방통은 당대에 이미 유명한 재야 인사였다. 그는 형주(荊州)의 양양군(襄陽郡, 오늘날 후베이성 북서쪽)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는 딱히 주목을 받진 못했었지만, 스무 살 때 사마휘(司馬徽)..

제2의 제갈량을 꿈꾼 강유(姜維)

문무를 겸비하고 있고 공명을 세우고자 함이 투철했다. 228년 봄,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諸葛亮, Zhūgě Liàng)은 당대의 초강대국 위나라를 상대로 첫 북벌에 착수하였다. 당초 위나라에서는 촉나라 하면 유비만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가 죽고나서 수년 동안 양국간 평화가 이어져 오고 있던 중 제갈량이라는 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이끄는 촉의 대군이 진군해 오고 있다는 것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그 당시 표현으로는 관중(關中) 일대를 뒤흔들었다고 할 만큼의 이슈였는데, 실제로 위나라 최전방의 3군(郡), 즉 남안군, 안정군, 그리고 천수군의 여러 현들이 두려움에 급박하게 촉나라에 귀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마침 이 당시 천수(天水, Tiānshuǐ)태수 마준(馬遵)은 공조 ..

조조의 차세대 책사, 곽가(郭嘉)

통찰력이 있었고 전략에 능하였으며 사리분별이 뛰어났다. 《삼국지》의 실질적인 주인공 조조의 주변에는 수많은 책사가 있었다. 제갈량이 위나라의 넘쳐나는 인재를 보면서 한탄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편향성을 감안하더라도, 《삼국지》의 인물들을 다룬 〈열전〉의 인명수만 단순 비교해보더라도 위나라가 촉나라의 2배에 달한다. 객관적 평가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당시 알려진 인물들의 이름만 카운트 하더라도 위나라가 경쟁국가들 대비해서 훨씬 인재의 풀이 폭넓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조조에게 있어 큰 도움을 준 성공적인 인재들도 많았지만, 여러 참모진 중에서 가장 안타까움을 자아낸 젊은 천재로는 곽가(郭嘉, 170~207)를 손꼽을 수 있다. 다른 모사들이 대부분 조조와 동년배들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