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 9

AI 그리고 "언어 대멸종"의 시대 (feat. 에스페란토의 미래)

알파고와 이세돌, 그리고 AI와 에스페란토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이 있다. 확실히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AI가 보여주는 미래를 저널리즘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챗GPT가 가져온 생성형 AI의 위협 하에 이제사 내 눈 앞에서 수없이 직업이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만,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바둑계는 그러한 서늘한 현실을 이미 10년 전에 예방주사 맞듯이 미리 겪었다. 당시 무언가 쎄한 느낌을 받은 나 역시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마지막으로 이긴 바로 그 대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다시는 인간은 AI를 상대로 이긴 적이 없다. 당시 세계 1위 커제도 전패하였고, 심지어 인간의 기보로 학습한 알파고는 그것 없이 혼자서 학습한 알파고 제로에게 또 ..

『지정생존자』, 인간은 차별을 원하는가?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이가 “명작”을 자신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정의한다고 하였다. 나 역시 이에 깊이 공감하였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돌이켜봐도 내가 감탄하며 보았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일관된 흐름 속에서도 보는 이마다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감동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한 편의 잘 만든 드라마는 우리를 감탄하게 하기도 하고, 울고 웃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에 대해 통찰하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다들 누구나 각자 인생의 드라마 한 편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2019년에 방영된 『60일, 지정생존자』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미국의 『Designated Survivor 』라는 원작드라마를 한국 버..

《삼국지 x 고구려》 우리가 모르는 삼국지 속 고구려 이야기

어렸을 적 나관중의 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때는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였는데 왜 그런 건 안 나올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그리고 커서 알았다. 나관중의 책은 소설이어서 생략되었을 뿐, 진수의 정사 에는 한반도와 만주의 삼국시대가 여러 모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뭐 나관중이 지금의 표현으로 중화주의자여서 일부러 빠트린 것이 아니라, 그저 중원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는 한족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정사 에는 아예 동이전(東夷傳)이 따로 있고, 그 안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삼한의 역사까지 들어 있다. 심지어 삼국의 쟁투와는 딱히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왜국, 즉 고대 일본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서..

『언어의 뇌과학』, 이중언어 사용자에 대한 냉철한 분석

자신의 모국어 외에 일부러 인종이 다른 정적들의 언어를 배운 넬른 만델라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외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머리로 가고, 상대방의 언어(모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이중언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핫 이슈이다. 특히나 자신의 모국어 외에 주로 영어를 기준으로 제1외국어를 습득케 하는 데에 거의 전세계가 혈안이 되어 있다. 언어적으로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특출난 프랑스도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은 물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세계를 향해 굳이 영어(!)로 전쟁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심지어 미국과 한창 전쟁 중인 이란 역시 자국민 대상이 아닌 바깥세상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할 때는 (적국의 언어라..

고려와 발해를 잇다 - 역사 속 경계인들의 이야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씩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학문을 하는 이들은 학설이든 주장이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정해진 양식으로 학문을 다뤄야 하다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실제로 인간들이 사는 현실은 완전 무질서(chaos) 그 자체의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절대 원인과 결과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고, 또 통계적으로 아름다운 그래프가 나올 리가 없는 게 또 인간 세상이다. 뿐인가, 역사는 글자든 유물이든 기록 내지 물질로 남아야지만 다룰 수가 있다. 본질적으로 시작점부터 자료의 한계라는 제약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남지 않은 무수한 정보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후대의 우리는 더 이상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

에스페란토는 왜 Samideano가 필요한가

에스페란티스토가 서로를 부르는 표현이 있다. Samideano. 풀어보자면 Sama-Ideo-Ano, 즉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좋은 뜻에서 그 의미는 이해가 간다.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닌 이들끼리 모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단합하여 이 힘든(?) 세상을 이겨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용어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심적으로는 부담감이 엄습해온다. 왜 우리는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것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이 서로에게 ‘같음’을 강요해온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것을 처음으로 강요했던 대표적 사례는 고중세의 종교, 특히 일신교 사상이다. 조금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도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역사를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또한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사상이 그 ..

어리석은 사람들(Nesaĝa Gento)

에스페란토 운동 초기에는 수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잇따랐습니다. 특히 교육, 문학, 언론 등 각 전문분야마다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는 열성적인 운동가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럼에도 간혹 예전 기록들을 찾아보다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한 작품들도 종종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올리는 작품은 겨우 스무 살에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불과 서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 젊은 천재 에스페란티스토 월터 존 클라크(Walter John Clark)의 우화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활동하였던 국제적인 인재였던 그의 관점에서 초기 에스페란토 운동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단편을 간단히 우리말 번역과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저 머나먼 미지의..

후삼국(後三國), 영웅들의 시대 (주류성출판사)

각국의 역사는 서로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은근 서로 닮은 구석들이 엿보이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투를 벌였던 삼국시대는 마치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가 등장하는 삼국지(三國志)를 연상시키는 시대입니다. 또 고려 때인 1270년에 무신정변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 무려 1백 년 간이나 지속되었던 무신정권의 경우는 일본의 쇼군(將軍)과 막부(幕府) 체제를 연상케 하는 그런 비상했던 시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의 전국시대는 거의 2천 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나라 전체가 싸움터가 되었다는 뜻에서 공히 전국(戰國)시대라고 일컬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시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후삼국시대입니다. 진성여왕 치세와 더불어 통일신라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각지에서 서로..

어린왕자 반스 (Prince Vance & Princo Vanc')

고전 동화 중에 "Prince Vanc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자는 엘리너 퍼트넘(Eleanor Putnam)과 알로 베이츠(Arlo Bates, 1850~1918)인데, 사실 이 둘은 부부입니다. 엘리너 퍼트넘은 해리엇 베이츠(Harriet Bates, 1856~1886)의 필명입니다. 1882년에 결혼한 베이츠 부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세상은 무정하게도 아내를 만 29세의 나이에 앗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혼자가 된 남편에게 남겨진 것은 아내의 유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빛을 본 작품이 이 Prince Vance입니다. 영어로 쓰인 원작은 시간이 지나 당시 절판이 되었고, 우연히 어느 에스페란티스토의 눈에 띄어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에스페란토로 다시 쓰인 이 소설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