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59

(신간) 자산 안확의 『한국사 개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우리나라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자산 안확입니다. 그는 독특하게도 문학, 음악 등 문화 역사에 주로 관심을 가졌는데, 오랜 연구 끝에 자신만의 역사관을 세운 주관이 뚜렷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치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를 기술한 『조선문명사』가 그의 대표작인데, 그것의 축약본에 해당하는 것이 본 책(원제: 조선사의 개관)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겠습니다. 우리 역사의 시대구분부터 그 동력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헤친 것이 이 작은 책자입니다. # 자세히 보기 : Link

견훤(甄萱)과 아자개, 배신으로 파탄난 부자관계

889년은 신라의 역사에서도, 아니 한국사 전체적으로도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던 해이다. 이때 발생한 원종(元宗)과 애노(哀奴)의 난을 계기로 천년왕국 신라는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해이기도 하고, 50년 가까이 난세를 맞이하였던 후삼국시대가 실질적으로 시작된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해를 기점으로 무려 7년 간을 최치원은 지옥같은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역설적으로 이때 등장한 영웅들만 해도 수도 없다. 대표적으로 태봉국의 궁예(弓裔)와 그의 뒤를 이은 고려의 건국자 태조 왕건(王建)이 있고, 또 오늘 다룰 인물인 후백제의 견훤(甄萱)도 그 중 한 명이다. 안타깝게도 중세 이전의 역사기록들이 왠만하면 다 그러하지만, 한 시대를 풍비하였던 이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

(신간) 차상찬의 역사 단편소설 모음집

일제강점기는 민족의 고난이 집중된 암울한 시대이기도 하였지만,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가 탄생하였고 센코쿠시대에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한편으로는 한민족이 스스로 깨우치려는 갖은 노력을 다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중 한 명이 차상찬이라는 문화운동가로, 잡지 "개벽(La Kreado)"을 통해 무수한 이야기를 생산해내기도 하였으나, 동시에 그 자신도 창작의 길로 나아갔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다작작가이기도 한 그 역시 한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중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품들만 짧게 모아본 것이 이 아담한 책이다.

신라 말 포석정(鮑石亭) 미스터리

927년 겨울 11월, 견훤의 후백제군이 신라 수도를 급습해왔다. 이때 경애왕은 왕실 구성원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 가서 잔치를 열고 노느라 적병이 이르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왕과 왕비는 달아나 후궁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일가친척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적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넙죽 엎드려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견훤은 병사들을 풀어서 온갖 재물을 약탈하게 하고, 자신은 궁궐을 차지하고는 달아난 왕을 찾아오게 하였다. 왕은 후궁에 있다가 이때 군영으로 잡혀와서는 자결을 강요받았다. 이것이 대략적인 견훤의 신라 급습 사건의 전말이다. 한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고 새로운 정부로 싹 갈아엎어버린 것은 물론, 이 직후에 뒤..

고려의 황제 궁예(弓裔)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승자의 기록이다. 영화 『짝패』의 명대사,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옳다. 결국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다. 역사에서는 그렇게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만 기억해준다. 오랜 격언 그대로 최후의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법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승자를 위협하였던 경쟁상대였다면 더더군다나 매장당해 마땅하다. 그런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궁예(弓裔)이다. 어떤 서양 학자가 잘 묘사하였다시피 크게 세 가지 인간군상이 있다고 했을 때, 좋은 놈은 태조 왕건(王建), 나쁜 놈은 후백제의 견훤(甄萱), 그리고 이상한 놈에 해당하는 것이 곧 궁예이다. 원래였다면 ..

고대와 근대 사이, 왜 중세만 중세(中世)인가?

역사를 구분짓는 가장 보편적인 틀은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값이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더 기본적이면서 누구나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프레임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의 학문이기 때문에 시대로 구분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기준은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잘 보면 튀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중세이다. 왜 중세만 굳이 ‘-世(세)’인 것일까? 나머진 모두 다 고대, 근대, 현대 등 ‘-代(대)’로 끝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미묘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러한 시대적 구분의 시초가 되는 서양의 용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영어에서는 각 시대를 형용사로 이렇게 부른다. an..

(신간) 후삼국 영웅전 - 차상찬

일제시대는 역설적으로 많은 작가들에게 창작의 동기를 부여한 엄혹했던 시기이기도하다. 이 납득하기 어려운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뇌와 고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 중 한 명인 차상찬은 그런 과정을 거쳐 스스로 글을 쓰는 것으로 해법을 찾고자 하였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은 동시대인들에게 흥미와 함께 한편으로 우리의 고전을 통해 생각할 꺼리를 제공해준다. 그렇게 민담도 있고, 설화도 있고, 단편소설도 남아 있지만, 동시에 역사에 대한 대중적인 글도 함께 남겼다. 그중에서도 궁예, 견훤, 태조 왕건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소책자 하나가 만들어진다. 오늘의 신간을 바로 그의 그런 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 자세히 보기 : Link

역사가 말해주는 결벽증의 위험성

예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의 아내가 자식들을 외출시킬 때 손에 비닐장갑같은 것을 씌우는 모습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결벽증(潔癖症)이었다.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도 되나 순간 내가 다 걱정이 되었다. 이는 병적으로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mysophobia라고 하는데, 그리스어의 불결과 공포증의 합성어이다. 적절한 위생관념은 물론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하였던 산욕열은 비위생적인 병원환경이 산모에게 치병적인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일부러 더럽게 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살균처리된 환경에서만 자라나면 생활에 필요한 면역력을 갖출 기회 자체가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

제멜바이스의 역설, 암세포는 자기가 암세포인 줄 모른다

19세기는 과학의 세기였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으며, 온갖 의학적 지식들이 체계를 갖춰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에 있던 산모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산욕열(産褥熱, puerperal fever) 때문에 고생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는 오히려 과학의 세기 이전에는 드물었지만 19세기 들어 급증하였던, 특히 병원에서의 발병률이 높았던 이상 현상이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여러 억측만 난무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라는 헝가리 출신의 의..

허균과 홍길동전, 누가 실제 작가인가?

오늘날 홍길동전(洪吉童傳)을 허균(許筠, 1569~1618)의 작품이라고 확신하는 이는 사실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증거가 워낙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허균의 홍길동전이라고 배우고 자라온 세대에게 이 사실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이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우선 허균 자신이 홍길동전을 스스로 지었다는 기록을 남긴 게 없다. 그리고 당연히 후세에 정리된 허균의 문집 어디에도 홍길동전과 관련된 언급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오늘날 남아 있는 홍길동전의 여러 판본에도 저자 이름으로 허균이 적혀 있지 않다. 더욱이 동시대인들 누구도(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허균의 홍길동전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허균은 50세 무렵에 반란 획책을 이유로 처형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