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50

(신간) 내 안의 유인원

빅 히스토리 차원에서 보자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지금의 인류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인간의 문명의 역사만 놓고 보자면 심지어 불과 수천 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자기들끼리 복작복작거리면서 지내온 게 전부이다. 이 문명조차도 크게 구분하자면 싸움이 최소한 그 절반은 차지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계통상 공격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침팬지(Chimpanzee)와의 유전자 일치율이 2%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번 싸움만 지지고 볶고 했어야 할 텐데, 재미있게도 인류의 역사는 또한 평화와 공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또한 유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바로 보노보(Bonobo)의 존재 덕분이다. 한때 피그미 침팬지라고도 불렸던 이 보노보는 이제는 ..

(신간) 게르마니아(Germania), 타키투스의 유럽판 <삼국지 동이전>

에 앞서 먼저 한 가지만 보고 넘어가자. 위나라의 뒤를 이은 진나라의 관리 출신인 진수(陳壽)가 위·촉·오의 삼국시대가 끝난 3세기 후반에 쓴 책이 바로 이다. 소설 때문에 매번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삼국시대의 역사적 인물들과 당시의 각종 사회상을 다룬 정식 역사서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소설 때문도 있지만, 역사학에서는 동시대의 속 고구려·백제·신라라는 또 다른 삼국시대를 제3자의 시각에서 기록한 자료들이 담겨 있어서이다. 왜 를 앞에 두고 뜬금없이 정사 를 이야기하냐면, 이 두 책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 정식 역사서가 되는 이유는 그 주변국들의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인데, 그 대표적인 챕터가 바로 에 부록처럼 달려 있는 이다. 이 동이전에..

귀실복신(鬼室福信), 백제 부흥의 마지막 불꽃

660년 9월 5일에 백제 출신의 달솔(2품) 직급의 관리와 앳된 승려가 왜국을 찾아왔다. 이들은 바다 건너 도망쳐 와서는 고국의 사정을 왜국 정부에 다급히 알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금년 7월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왕과 신하는 모두 포로가 되었으며, 사람들도 붙잡혀 가거나 다들 흩어져버렸습니다. 이에 서부의 은솔 귀실복신은 분개하여 임사기산(任射岐山)을 차지하였고, 또 달솔 (부)여자진은 중부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에 자리잡고는 흩어진 병력을 불러 모았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랏사람들이 그들을 높여 ‘좌평(1품) 복신, 좌평 자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복신만이 신기에 가까운 무력으로 망국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귀실복신..

흑치상지(黑齒常之), 백제의 마지막 명장

660년 7월 12일, 당나라군 13만 명, 신라군 5만 명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 포위를 위해 그 앞 소부리 벌판까지 진격해왔다. 의자왕의 아들들이 당-신라 연합군 진영으로 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성을 무력으로 함락시키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굳이 항복을 받아주고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라 연합군의 거절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그날 밤 바로 태자 부여효(扶餘孝)와 극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국왕이 다른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심지어 손자마저 방치한 채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다급히 동북쪽의 군사요충지인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향했다. 당장에 포위망이 완벽..

웅진도독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웅진/공주 vs. 부여/사비)

이름이 갖는 힘이 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모들도 그 이름 짓기에 나름의 공을 쏟는다. 이름 그대로 살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고려가 처음에 건국할 때 굳이 ‘고려(高麗)’라고 이름 지은 것은 그 나라가 ‘고구려’를 이어 북방 강국으로 발돋움하기를 희망해서였다. (물론 이름대로 다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재밌는 것은 이름과 실체가 따로 놀 때이다. 이런 경우도 은근히 많다. 이를테면 고대 일본, 즉 왜국의 기록을 보다 보면 한자로는 ‘唐(당)’이라 쓰고 발음은 ‘가라(から)’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해외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 전달자인 가야(가라)를 그 당시의 선진국 당나라와 동일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이름이 갖는 힘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는..

부여 사비성(泗沘城), 동방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수도의 함락으로 한 국가가 멸망한 경우는 그 과정 자체가 다이내믹하면서도 극적이기에 역사가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정보가 부족하기로 악명 높은 발해조차도 수도 상경성의 함락 과정은 일자별로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에 비견되는 것이 고구려의 평양성 함락, 그리고 백제의 사비성 함락이다. 어느 것 하나 감히 제외할 수 없을 만큼 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없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백제의 최후를 한번 살펴보자. 백제는 크게 보면 두 번의 천도를 거쳤다. 초기에 한성의 위례성 자체도 옮긴 기록이 있지만 지근거리의 이동은 거국적인 천도는 아니니 제외하자면, 한번은 웅진(공주), 또 한번은 사비(부여)가 그곳이다. 우선 475년 9월에 고구려 장수왕이 3만의 대군을 동원해 백제의 왕도 한성(漢..

고구려의 평양과 낙랑군 이야기

오늘은 민감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시작하기 전에 변명부터 해보자면, 역사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다. 그저 여러 근거들에 대한 타당한 취사선택과 좀 더 합리적인 해석, 그리고 각자가 이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제시하는 주장 내지 의견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직접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 않는 한은 부득이 이 지난한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곧 역사를 바라보는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일 것이다. 그 점을 참고하여 논의를 진행해보자. 평양에 있던 낙랑?학계에서는 고구려에 평양이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뭔가 대단한 이유나 증거가 있어서는 아니다. 현재 평양이 있던 자리에 ‘낙랑’이 있었기에 3세기에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 같은 곳에 두 ..

『지정생존자』, 인간은 차별을 원하는가?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인데, 어떤 이가 “명작”을 자신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정의한다고 하였다. 나 역시 이에 깊이 공감하였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돌이켜봐도 내가 감탄하며 보았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일관된 흐름 속에서도 보는 이마다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감동과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한 편의 잘 만든 드라마는 우리를 감탄하게 하기도 하고, 울고 웃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어떤 의미에서 인생에 대해 통찰하는 계기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다들 누구나 각자 인생의 드라마 한 편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2019년에 방영된 『60일, 지정생존자』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미국의 『Designated Survivor 』라는 원작드라마를 한국 버..

고려와 발해를 잇다 - 역사 속 경계인들의 이야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씩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학문을 하는 이들은 학설이든 주장이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정해진 양식으로 학문을 다뤄야 하다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실제로 인간들이 사는 현실은 완전 무질서(chaos) 그 자체의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절대 원인과 결과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고, 또 통계적으로 아름다운 그래프가 나올 리가 없는 게 또 인간 세상이다. 뿐인가, 역사는 글자든 유물이든 기록 내지 물질로 남아야지만 다룰 수가 있다. 본질적으로 시작점부터 자료의 한계라는 제약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남지 않은 무수한 정보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후대의 우리는 더 이상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

(신간) 후삼국, 영웅들의 시대 (주류성출판사)

각국의 역사는 서로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은근 서로 닮은 구석들이 엿보이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투를 벌였던 삼국시대는 마치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가 등장하는 삼국지(三國志)를 연상시키는 시대입니다. 또 고려 때인 1270년에 무신정변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 무려 1백 년 간이나 지속되었던 무신정권의 경우는 일본의 쇼군(將軍)과 막부(幕府) 체제를 연상케 하는 그런 비상했던 시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의 전국시대는 거의 2천 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나라 전체가 싸움터가 되었다는 뜻에서 공히 전국(戰國)시대라고 일컬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시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후삼국시대입니다. 진성여왕 치세와 더불어 통일신라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각지에서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