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의 역사는 서로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은근 서로 닮은 구석들이 엿보이곤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투를 벌였던 삼국시대는 마치 중국의 위, 촉, 오 세 나라가 등장하는 삼국지(三國志)를 연상시키는 시대입니다. 또 고려 때인 1270년에 무신정변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 무려 1백 년 간이나 지속되었던 무신정권의 경우는 일본의 쇼군(將軍)과 막부(幕府) 체제를 연상케 하는 그런 비상했던 시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의 전국시대는 거의 2천 년의 격차가 있음에도 나라 전체가 싸움터가 되었다는 뜻에서 공히 전국(戰國)시대라고 일컬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시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후삼국시대입니다. 진성여왕 치세와 더불어 통일신라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각지에서 서로 살기 위해 각자도생에 뛰어들었던 시기,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후삼국이라고 부르는 시대가 됩니다.
슬픈 일이지만 절대다수에게는 위기가 되었던 그것을 오히려 기회 삼아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이들은 대개 영웅으로 불리곤 합니다. 전시가 아닌 평시, 곧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결코 두각을 드러낼 수 없었을 사회의 비주류들이 주류로 올라서면서 영웅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무력과 지혜의 대결을 통해 세력 확장을 벌여 결국 다시 통일을 이루어가던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는 후삼국 시대였습니다.
궁예는 그 시대에 차별받기 쉬웠던 장애인 승려였고, 견훤(진훤)은 변경의 장수이자 동시에 반역자의 자식이었으며, 왕건은 그 조상들의 출신조차 불분명한 중국, 고구려(혹은 발해) 등 다문화가정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후삼국 최고의 장군 유금필은 어쩌면 순수 신라인이 아니라 어쩌면 북방계열 출신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마치 한때 유명했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속 주인공들처럼 각자 어느 정도의 한계와 불운을 지니고 성장한 이들이 서로 어떻게든 난세를 극복하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고자 경쟁을 벌였던 시대가 곧 후삼국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그 경쟁의 결과를 익히 배워 알고는 있지만, 의외로 그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는 잘 모릅니다. 한반도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전국시대"에 누가 무슨 생각과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떻게 행동함으로써 고려(高麗)라는 통일된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찬란했던 모습과 경탄의 순간들을 만끽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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