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13

연천 고구려성 여행 -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역사탐방이다. 주로 박물관을 대상으로 삼긴 하지만, 당연히 그 지역의 주요 유적지도 항상 들른다. 이번 연휴 때는 경기도 연천, 곧 DMZ 바로 아래의 임진강 루트를 따라 고구려 성들을 목적지로 삼았다.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한 쪽에는 고구려의 유적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남쪽 국경선 자체가 남한 땅 아래까지 그렇게 많이 밀고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광개토대왕의 호우그릇이나 충주에서 장수왕의 고구려비가 발견되기도 하긴 했지만, 오히려 역사적으로는 드문 케이스이다.다만 남한에서도 고구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은 다행히 일부 남아 있다. 바로 연천이다. 여기에는 가장 유명한 호로고루도 있고, 그보다는 덜 유명한 당포성, 그리고 아직..

역사 탐방 2026.10.07

(신간) 신채호의 을지문덕 (en Esperanto)

민족사학자 신채호의 중편 역사서인 을지문덕전을 오늘날 에스페란토를 통해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번역한 신작이 나왔습니다. 전반부는 에스페란토로, 후반부는 한글 원문을 수록하여 비교해가면서 읽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채호 특유의 고어체가 에스페란토를 만나 색다르게 재탄생한 버전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한글로 된 작품은 부득이 거의 한국인들만 읽을 수밖에 없는데, 국내의 고전 역사서들도 세계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이런 책들이 점점 더 많이 출간되어 나오기를 희망해봅니다. (곧 전자책으로도 나올 예정입니다.) # 자세히 보기 : Ligilo

Semajna Historio 2026.07.09

《삼국지 x 고구려》 우리가 모르는 삼국지 속 고구려 이야기

어렸을 적 나관중의 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때는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였는데 왜 그런 건 안 나올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그리고 커서 알았다. 나관중의 책은 소설이어서 생략되었을 뿐, 진수의 정사 에는 한반도와 만주의 삼국시대가 여러 모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뭐 나관중이 지금의 표현으로 중화주의자여서 일부러 빠트린 것이 아니라, 그저 중원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는 한족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정사 에는 아예 동이전(東夷傳)이 따로 있고, 그 안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삼한의 역사까지 들어 있다. 심지어 삼국의 쟁투와는 딱히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왜국, 즉 고대 일본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서..

고려와 발해를 잇다 - 역사 속 경계인들의 이야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씩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학문을 하는 이들은 학설이든 주장이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정해진 양식으로 학문을 다뤄야 하다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실제로 인간들이 사는 현실은 완전 무질서(chaos) 그 자체의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절대 원인과 결과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고, 또 통계적으로 아름다운 그래프가 나올 리가 없는 게 또 인간 세상이다. 뿐인가, 역사는 글자든 유물이든 기록 내지 물질로 남아야지만 다룰 수가 있다. 본질적으로 시작점부터 자료의 한계라는 제약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남지 않은 무수한 정보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후대의 우리는 더 이상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

고구려 환도성과 평양성, 그 수도 이전의 역사

고대 삼국에서 천도를 한 번도 안한 국가는 신라 하나뿐이다. 정확히는 신문왕(神文王) 때인 689년에 달구벌(達句伐), 오늘날 대구 일대로 옮겨갈 계획을 세웠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행까지는 되지 않았다. 즉위 직후 장인인 김흠돌(金欽突)의 난을 무사히 극복한 그는 아버지 대에 끝난 나당전쟁 이후의 신라를 안정화시키는 데에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 특히 지방행정을 정리한 공이 큰데, 서원소경(西原小京, 충북 청주)과 남원소경(南原小京, 전북 남원)을 신설한 것도 그였고, 오랜 전쟁이 끝난 만큼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고구려 유민들의 보덕국(報德國)을 해체시킨 것도 그였다. 또한 완산주(完山州)를 비롯해 청주(菁州), 웅천주(熊川州), 무진주(武珍州), 사벌주(沙伐州) 등을 설치하여 최종적으로 9주(州) ..

고대 한반도에 있던 말갈(靺鞨)이라는 존재

역사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자칫 잘못 해석하는 순간 고대 로마가 한민족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고대 스키타이가 갑자기 신라가 되기도 하는 게 역사(?)이다. 그만큼 조심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 곧 역사이다. 그럼에도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 다룰 주제는 정답이 없는 이야기이다. 바로 고대 한반도에 실존하였던 말갈(靺鞨)이란 존재이다. 말갈은 거칠게 말해서 기원전부터 존재하였던 옛 숙신(肅愼)을 모태로 한 읍루(挹婁), 물길(勿吉) 등의 후예 정도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와 중국계 역사서들간의 차이이다. 에는 읍루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고, 물길은 504년에 한 번 언급이 있고, 숙신은 121년과 246년, 280년에 세 차례 등장할 ..

(모두루묘지) La Entombŝtono de Moduru

Desaĝa(大使者, la kvara rango de Gogurjo) Moduru(牟頭婁) … La sankta reĝo, Ĉumo(鄒牟, alinome Ĝumong), kiu estis nepo de Habek(河泊, la dio de riveroj) kaj filo de Ĉielo(日月), naskiĝis en Norda Bujo(夫餘天). Do, la tuta mondo sciis, ke ĉi tiu lando estas la plej sankta.… la praavo, kiu estis subulo de la sankta reĝo, … postvenis lin el Norda Bujo. … En la regado de tiama reĝo(國𦊆上聖太王) … Jommo(冉牟) … Murong Sia..

Semajna Historio 2026.03.26

(충주고구려비) La Monumento de Gogurjo en Ĉungĝu

… En majo, la granda reĝo de Gorjo … venis orienten, esperante ke li kaj la reĝo(寐錦, “megum” en la sinla) de Sinla povus helpi unu la alian kvazaŭ fratoj. La reĝo, Gi(忌), lia tronheredonto, Gong(共), Desaĝa(大使者, la kvara rango en Gogurjo) de Fronta Departamento(前部), Dauhŭanno(多于桓奴), kaj Ĝubu(主簿, alia rango de Gogurjo), Guidok(貴德), k.t.p. venis al Gŭejong(跪營). La tronheredonto Gong diris al nia re..

Semajna Historio 2026.03.25

(광개토왕릉비) La Steleo de la reĝo Gŭanggeto

※ Ĉi tiu "..." signifas, ke la literoj sur la steleo jam neniiĝis. Iam nia fondpatro, la reĝo Ĉumo(鄒牟王, alinome Ĝumong(朱蒙)), fondis la landon. Li naskiĝis en Norda Bujo(北夫餘). Li estis filo de la patro, Ĉiela Dio(天帝, aŭ lia filo Hemosu(解慕漱)), kaj lia patrino estis filino(Juhŭa(柳花)) de Habek(河伯, la dio de riveroj). Eloviĝante, li descendis en la mondon, t.e. li estis sankta ekde sia naskiĝo. … Ki..

Semajna Historio 2026.03.24

북국 부여, 그 길고도 짧은 역사

부여라는 나라를 알고 있는가? 들어는 보았겠지만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달리 부여의 역사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에도 부여는 등장하긴 하지만 그저 고구려의 조연 정도 역할에 그친다. 한 마디로 무플에 가까운 존재감이다. 그럼 부여의 시작은 언제일까? 에 인용된 에는 그것을 기원전 59년 4월 8일로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년 4월 8일, 천제(天帝)가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五龍車)를 타고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으로 일컬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자칭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부여는 기원전 사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