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유민 3

발해의 후예, 정안국 혹은 올야 이야기

발해는 거란군의 고도의 기동작전에 의해 공식적으로는 926년 2월 19일에 멸망하였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그렇듯 유민들의 부흥운동이 각지에서 펼쳐졌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들의 무수한 활동이 있었겠지만 (거란에 의해 세워진 기미국(羈縻國)인 동거란국(東丹國)을 제외하고)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발해의 계승국가는 정안국(定安國)이다. 발해 역사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 구체적인 정보는 놀라우리만치 거의 없다. 심지어 언제 건국되었는지, 역대 국왕들의 계보는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언제 멸망하였는지조차 아무런 정보가 없다. 마치 발해의 역사를 찾아나갈 때 눈을 가리고 코끼리를 더듬더듬 만져가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듯이, 그 후예인 정안국 역..

후삼국, 발해, 고려... 그 사이의 경계인들

오늘날의 국경선은 상당히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된다. 국가를 이루는 3대 요소로 통상적으로 영토, 국민, 주권 이렇게 세 가지를 드는데, 실제로 그 중 하나인 영토가 곧 현대 국가들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기에 세계의 온갖 곳에서 땅(혹은 바다까지)을 가지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 고대와 중세 국가들은 어떠했을까? 재밌는 것은 오늘날의 국경선, 즉 선으로서의 국경 구분은 정말 근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사실 과거에는 선이 아니라 면으로서의 국경지대가 존재했을 뿐 오늘날처럼 국경 검문소같은 두 국가가 딱 마주서서 선을 긋고 관리하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DMZ처럼 너른 중간영토가 일종의 국경선 역할을 하였는데, 이 또한 정확하진 않은 것이 왜냐하면 서로 ..

고려의 서경과 발해유민 이야기

역사서에는 전후 사정과 무관하게 뜬금없이 한 줄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광종(光宗) 25년차의 다음 기록이 그렇다. (974년) 이 해에 서경(西京)의 거사(居士) 연가(緣可)가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당하였다. 이 기사 전에는 과거 합격 기록이, 다음해에는 광종의 사망 기사가 전부이다. 도대체 전후 문맥 상관없이 나와 있는 이 기사에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처럼 너무 바로 앞의 상황에 매몰되어서 전체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아예 저 멀리서 현재를 조망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약간 시야를 넓혀서 동시대를 바라보자. 이 무렵 재밌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미리 약간만 스포하자면 발생 장소는 당시 거란의 요나라 영토로 귀속되어 있던 옛 발해의 부여부(扶餘府)가 있던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