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고려와 발해를 잇다 - 역사 속 경계인들의 이야기

위클리 히스토리 2026. 5. 12. 10:25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씩은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학문을 하는 이들은 학설이든 주장이든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한다. 정해진 양식으로 학문을 다뤄야 하다보니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실제로 인간들이 사는 현실은 완전 무질서(chaos) 그 자체의 세상이다. 인간 세상에서는 절대 원인과 결과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질 수가 없고, 또 통계적으로 아름다운 그래프가 나올 리가 없는 게 또 인간 세상이다.

 

뿐인가, 역사는 글자든 유물이든 기록 내지 물질로 남아야지만 다룰 수가 있다. 본질적으로 시작점부터 자료의 한계라는 제약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남지 않은 무수한 정보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다. 후대의 우리는 더 이상 그 존재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시를 들어보자. 기원전 45년에 낙랑 지역에는 28만 명이 살았는데, 그 인근에서 발굴되는 나름 많은 유물들 덕분에 그들의 생활상을 아주 약간은 복원할 수가 있다. 반면 기원전 128년에는 예 지역에도 똑같이 28만 명이 살았다는데, 그들이 어디 살았었는지도 모르고 당연히 그들의 주거지 자체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예인 28만 명의 실제 생활상을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숫자는 기록으로 남은 덕분에 집단의 규모라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일은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 기록이라도 남기면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신들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다. 남겼어도 사라지거나 없애버리거나 해서 발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런 존재들 중에는 두 국가 사이의 비어 있는 공간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들도 있다. 우리는 그들을 경계인(marginal man)이라 부른다. 대개는 공간적 의미로서 사용되지만, 어찌 보면 시대적 간극의 비어 있는 시기를 살았던 이들도 경계인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역사에서 시공간적으로 존재는 하였으되 기록상 인지하기 어려운 이들도 일종의 역사적 경계인으로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국시대에 발해와 신라 사이의 경계에 살았던 이들, 후삼국시대에 통일국가 고려와 멸망당한 발해 사이에 존재했던 이들, 또 고려나 요나라, 금나라 안에서 오래도록 주변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유민들, 이 모두가 경계인들이 아니었을까. 오늘날 유대인들은 자신만의 국가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사회 내에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도 차지하고 있다면, 과거의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에 걸쳐 존재했던 발해의 지방민 내지 정확히 소속을 특정할 수 없는 이들은 집단적 디아스포라를 겪은 다음 수백년에 걸친 독립을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자생존에는 결국 실패한 채 어딘가에 흡수되어 최종적으로는 소멸되고 만다. 그들의 파편화된 역사는 이 책 “고려와 발해를 잇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역사는 기록의 학문이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이들은 역사의 패자 정도가 아니라 그저 소멸되어 기억에조차 남지 못하게 된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나라는 존재를 밝히고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