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50

고구려 환도성과 평양성, 그 수도 이전의 역사

고대 삼국에서 천도를 한 번도 안한 국가는 신라 하나뿐이다. 정확히는 신문왕(神文王) 때인 689년에 달구벌(達句伐), 오늘날 대구 일대로 옮겨갈 계획을 세웠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행까지는 되지 않았다. 즉위 직후 장인인 김흠돌(金欽突)의 난을 무사히 극복한 그는 아버지 대에 끝난 나당전쟁 이후의 신라를 안정화시키는 데에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 특히 지방행정을 정리한 공이 큰데, 서원소경(西原小京, 충북 청주)과 남원소경(南原小京, 전북 남원)을 신설한 것도 그였고, 오랜 전쟁이 끝난 만큼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고구려 유민들의 보덕국(報德國)을 해체시킨 것도 그였다. 또한 완산주(完山州)를 비롯해 청주(菁州), 웅천주(熊川州), 무진주(武珍州), 사벌주(沙伐州) 등을 설치하여 최종적으로 9주(州) ..

고대 한반도에 있던 말갈(靺鞨)이라는 존재

역사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정보들이 가득하다. 자칫 잘못 해석하는 순간 고대 로마가 한민족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고대 스키타이가 갑자기 신라가 되기도 하는 게 역사(?)이다. 그만큼 조심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 곧 역사이다. 그럼에도 구더기 무서워 장을 안 담글 수는 없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 다룰 주제는 정답이 없는 이야기이다. 바로 고대 한반도에 실존하였던 말갈(靺鞨)이란 존재이다. 말갈은 거칠게 말해서 기원전부터 존재하였던 옛 숙신(肅愼)을 모태로 한 읍루(挹婁), 물길(勿吉) 등의 후예 정도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와 중국계 역사서들간의 차이이다. 에는 읍루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고, 물길은 504년에 한 번 언급이 있고, 숙신은 121년과 246년, 280년에 세 차례 등장할 ..

말갈(靺鞨)은 과연 한민족의 선조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승만이고, 또 일제 패망 당시 마지막 주석은 김구였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물론 그 사이에도 여러 명의 대통령 혹은 주석이 재임하였다. 그 중에 이승만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이가 바로 박은식(朴殷植)이다. 나름 독립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인데, 흥미롭게도 『한국통사(韓國痛史)』즉, 조선 말부터 일제의 국권 침탈까지의 아픈(痛) 역사를 다룬 역사서의 저자로 더 유명할 것 같다. 그런데 시대적 영향으로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했던 박은식이 쓴 글 중에는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라는 일종의 단편 역사소설이 있다. 꿈속에서 금나라 태조 아구다(阿骨打)를 만나 민족의 고통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언을 듣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다. 다른 부분은 차..

고대의 인구조사(Census) 이야기

의외로 인구조사(Census)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 로마도, 고대 중국도 국가가 정책적으로 전국의 인구수를 조사한 기록이 있다. 가까운 중국의 경우에는 작은 지역 단위의 인구수까지 조사한 통계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물론 이는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의해 조사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떨까? 약간 안타깝지만 국가 차원이든 뭐든 지역별 인구통계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전국적으로 제대로 된 인구조사는 조선시대의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번 최대한 긁어모을 수 있는 정보들을 가지고 오늘은 한번 고중세 이 땅(+만주)의 나라들의 인구를 추산해보도록 하겠다. 가장 이른 시기의 인구기록은 재밌게도 예(濊)라는 고대민족의 것이다. 원삭(元朔)..

탐라 아일랜드 공화국(Republic of Tamla Island), 제주의 독립에 대하여

제주도는 대한민국에서 독립 가능할까? 물론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정말 하고 싶다 하더라도 국내외 정치, 경제 문제, 군사/안보, 집단별 문화적 차이 등 무수히 많은 이슈가 산적해 있다. 그래서 솔직히 절대 쉽지 않다. 허나 한편으로 과거 제주도의 오랜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슬프게도 과연 제주도는 꼭 한반도에 부속되어 있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한번쯤 들기도 한다. 역사는 상상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냥 한번쯤 만약에 그때 독립국 탐라가 굳이 백제, 신라, 고려와 거리를 그렇게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는 것은 개인의 자유 아니겠는가. (여담이지만, 탐라는 백제 멸망 후 일본(당시엔 왜국)측과도 따로 교류를 하였던 적이 있다. 그때 줄을 어떻게 섰느냐에 따라 자칫 일본의 섬이 될 ..

(신간) 발해고(渤海考) - BALHEGO en Esperanto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를 지으면서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짓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역사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땅을 영구히 잃어버렸다는 뜻이었지요. 그러면서 과거 통일신라로 불렀던 그 기간을 남쪽의 신라오 북쪽의 발해를 합쳐 "남북국시대"로 새롭게 명명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본이 4개 나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인데, 한편으로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옛 한문으로 지어진 책이다보니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어로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중요한 책을 세계 최초(!)로 순수 에스페란토(Esperanto)로만 번역을 한 책이 나왔습니다. 양도 많지 않아서 읽기에..

(신간) 현진건의 흑치상지(黑齒常之)

일제강점기는 수많은 우리 선조들에게 기나긴 고난의 세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특히 젊은 지식인들에게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부터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작가들이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중 이광수, 김동인, 신채호 등 외에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여러 단편소설로 유명한 현진건(1900~1943) 역시 민족주의적 성향이 담긴 역사소설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은 그의 중편소설인 "흑치상지"입니다. 당나라라는 무도한 외세에 저항하는 백제인들의 모습을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풀어쓴 역사소설입니다. 미완의 책이긴 하나 중간에 흑치상지를 ..

역사 연구를 위한 소스들

역사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자료가 많이 필요하다. 당연히 원사료와 같은 글감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진이나 지도 등 정말 많은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신력과 자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고, 더하여 저작권 이슈까지도 가급적 해결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이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한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 국사편찬위원회한국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1순위가 되는 사이트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우리의 역사 원전 자료가 풍성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사조선전(소위 25사), 일본육국사, 입당구법순례행기, 선화봉사고려도경, 원고려기사 등 각종 외국 자료도..

마한(馬韓), 고조선과 한반도를 잇다

장면 #1. 2009년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바로 전혀 도굴되지 않은 상태의 사리공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굴된 것이다. 여러 놀라운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랫동안 백제 무왕의 아내는 선화공주라고 믿어왔던 신화가 깨진 것이다. 그곳에는 무왕의 왕후가 좌평(1품) 사택적덕(沙乇積德)의 딸이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신화 속 선화공주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장면 #2. 무왕(武王) 조에는 서동(薯童)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연(一然)이 여기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전해진다. 옛 판본에는 무왕이 아니라 무강(武康)왕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백제에는 무강이 없다”고 정확히 지적하였다..

부여의 후예, 두막루

723년, 두 사신단이 당나라를 방문하였다. 한쪽은 몽골의 선조로 추정되는 실위 계통의 달구(達姤)였고, 또 하나는 달말루(達末婁)라는 생소한 이름의 국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특히 후자가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소개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고구려가 북부여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유민들은 나하(那河, 타루하(他漏河))를 건너 그 북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달구는 나하의 남쪽에 있어서 동북쪽에 위치한 달말루와 가깝게 지냈기에 이번에 함께 오게 된 것이었던 모양이다. 북부여의 공식적인 멸망 시점은 346년으로, 연나라(전연)를 세운 모용선비 세력에 의해 그 국왕과 5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끌려가는 것으로 부여의 역사는 곧 종결되었다. 부여의 수많은 후예들, 이를테면 북부여 외에도 가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