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때는 우리나라도 삼국시대였는데 왜 그런 건 안 나올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그리고 커서 알았다. 나관중의 책은 소설이어서 생략되었을 뿐,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는 한반도와 만주의 삼국시대가 여러 모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뭐 나관중이 지금의 표현으로 중화주의자여서 일부러 빠트린 것이 아니라, 그저 중원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는 한족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정사 <삼국지>에는 아예 동이전(東夷傳)이 따로 있고, 그 안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삼한의 역사까지 들어 있다. 심지어 삼국의 쟁투와는 딱히 상관도 없어 보이는(?) 왜국, 즉 고대 일본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다. 역사서 치고는 소략하다는 평가를 받는 <삼국지>이지만 대략 있을 건 다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정도가 아니다. 위촉오 삼국이 어쩌다보니 모두 고구려와 어느 정도씩은 역사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소위 삼국지 매니아라 하는 분들도 삼국지와 밀접한 연계가 있던 고구려, 부여의 사건들에는 약하기까지 하다. 물론 스토리의 핵심에서는 많이 벗어난 주변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선 강인욱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한번 언급한 적도 있는 옥저의 유물 하나는 놀랍게도 그 출처가 촉나라로 밝혀져 있다. 촉나라 사람이 직접 가져왔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원거리 무역을 통해서든 나중에 고구려를 침략해온 중원의 군대가 놓고 간 것이든 간에, 여하튼 직선거리로 계산해도 2천5백km가 넘는 저 먼 지역끼리 모종의 연관이 지어진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손권의 오나라도 그렇다. 중원의 남방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오나라가 저 멀리 만주의 고구려까지 외교관계를 개설하였다는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손권의 주도 하에 오나라는 고구려와 외교를 맺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다. 황제로 갓 등극한 손권이 자신의 외교 치적을 쌓기 위해 과감하게 추진하였던 공손씨의 요동왕국과의 외교가 틀어지면 그 다음으로 찾은 차선책이 고구려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많은 굴곡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중원의 삼국 중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웠던 위나라는 더 직접적이다. 이미 위나라가 들어서기 전 한나라 시절부터 황건적의 난 이후 혼란스러웠던 중원으로부터 많은 난민들이 고구려로 쏟아져 들어왔고, 조조는 고구려 바로 옆에 있던 오환(烏桓) 정벌을 위해 친정을 해온 적도 있으며, 사마의는 아예 고구려의 병력지원을 받아가면서 공손씨의 잔존세력을 척결하러 만주까지 건너오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사마의 다음에는 위나라도 결국 배신하여 관구검을 파병해 고구려를 한 차례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 국난을 극복한 고구려가 오히려 나중에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말이다.
이처럼 중원의 <삼국지>와 우리의 <삼국사기>가 만나는 지점을 다룬 역사책이 바로 『고구려와 삼국지 』이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역사 속 이면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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