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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멜바이스의 역설, 암세포는 자기가 암세포인 줄 모른다

19세기는 과학의 세기였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으며, 온갖 의학적 지식들이 체계를 갖춰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에 있던 산모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산욕열(産褥熱, puerperal fever) 때문에 고생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는 오히려 과학의 세기 이전에는 드물었지만 19세기 들어 급증하였던, 특히 병원에서의 발병률이 높았던 이상 현상이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여러 억측만 난무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라는 헝가리 출신의 의..

허균과 홍길동전, 누가 실제 작가인가?

오늘날 홍길동전(洪吉童傳)을 허균(許筠, 1569~1618)의 작품이라고 확신하는 이는 사실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증거가 워낙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허균의 홍길동전이라고 배우고 자라온 세대에게 이 사실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이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우선 허균 자신이 홍길동전을 스스로 지었다는 기록을 남긴 게 없다. 그리고 당연히 후세에 정리된 허균의 문집 어디에도 홍길동전과 관련된 언급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오늘날 남아 있는 홍길동전의 여러 판본에도 저자 이름으로 허균이 적혀 있지 않다. 더욱이 동시대인들 누구도(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허균의 홍길동전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허균은 50세 무렵에 반란 획책을 이유로 처형당하..

(신간) 신채호의 을지문덕 (en Esperanto)

민족사학자 신채호의 중편 역사서인 을지문덕전을 오늘날 에스페란토를 통해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번역한 신작이 나왔습니다. 전반부는 에스페란토로, 후반부는 한글 원문을 수록하여 비교해가면서 읽어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채호 특유의 고어체가 에스페란토를 만나 색다르게 재탄생한 버전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한글로 된 작품은 부득이 거의 한국인들만 읽을 수밖에 없는데, 국내의 고전 역사서들도 세계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이런 책들이 점점 더 많이 출간되어 나오기를 희망해봅니다. (곧 전자책으로도 나올 예정입니다.) # 자세히 보기 : Ligilo

Semajna Historio 2026.07.09

(신간) 내 안의 유인원

빅 히스토리 차원에서 보자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지금의 인류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인간의 문명의 역사만 놓고 보자면 심지어 불과 수천 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자기들끼리 복작복작거리면서 지내온 게 전부이다. 이 문명조차도 크게 구분하자면 싸움이 최소한 그 절반은 차지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계통상 공격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침팬지(Chimpanzee)와의 유전자 일치율이 2%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번 싸움만 지지고 볶고 했어야 할 텐데, 재미있게도 인류의 역사는 또한 평화와 공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또한 유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바로 보노보(Bonobo)의 존재 덕분이다. 한때 피그미 침팬지라고도 불렸던 이 보노보는 이제는 ..

(신간) Myrtis Smith의 에스페란토 중·단편소설 시리즈

에스페란토 세계는 과거에 많이 함몰되어 있습니다. 책도 1백 년 전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고, 여전히 유통되는 책들도 1~20년은 기본으로 된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참 슬픈 일이죠. 그럼에도 이 어려운 상황에서 간혹 새로운(!) 책을 내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중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가 바로 머티스 스미스(Myrtis Smith)입니다. 원래도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라서 기본적으로는 영어로 책을 쓰지만, 에스페란토의 사상에 공감한 이래 그녀 역시 이쪽 세계에 읽을거리가 너무 부족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서, 스스로 읽어볼 만한 단편 소설들을 꾸준히 집필하여 출간하는 식으로 나름의 재능기부(Pro Bono)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은 사실 다른 분이 해주긴 합니다만..) 그녀의 소설은 깊이..

(신간) La Verda Koro(초록의 마음)

에스페란토가 등장하고 얼마 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안타깝게도 에스페란토의 상승세를 꺾어놓은 첫 번째 중대한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를 배경으로 한 초창기 소설이 한 권 있는데, 바로 율리오 바기(Julio Baghy)의 이 “La Verda Koro”입니다. 한국어로도 번역 출간되어 있는데, “초록의 마음”(장정렬 옮김)으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작가 본인의 시베리아 포로 시절이 배경이어서 살아숨쉬는 듯한 당시 상황을 직접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경우 Formiko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것인데, 에스페란토 전문 출판사로 요새 제가 주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에스페란토를 다루는 출판사여서 그런지 bilingual이 컨셉입니다. 이 책만 해도 왼쪽에 영어, 오른쪽에 ..

(신간) 미스터 에스페란토 (Mr. Esperanto)

간혹 기대치 않았던 놀라움을 느끼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텐데, 최근에 읽은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러했다. 제목에 에스페란토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마존에서 사서 읽은 책. 생각보다 재밌었고 예상보다 짜임새도 좋았다. 결론을 스포할 수는 없으니 배경만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21세기 초에 실제 일어났던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보여주었듯, 가상의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의 일부 지역들이 분리된다는 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중 작은 지역 네 곳이 하나의 소국으로 독립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전주민 찬반투표를 비롯해 각종 정치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 커다란 흐름이다. 이와중에 국제테러도 터지고 정치공학적 경쟁도 펼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점차 이 신생국 노바줄(Novazul)은 어찌어찌 ..

(신간) 게르마니아(Germania), 타키투스의 유럽판 <삼국지 동이전>

에 앞서 먼저 한 가지만 보고 넘어가자. 위나라의 뒤를 이은 진나라의 관리 출신인 진수(陳壽)가 위·촉·오의 삼국시대가 끝난 3세기 후반에 쓴 책이 바로 이다. 소설 때문에 매번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삼국시대의 역사적 인물들과 당시의 각종 사회상을 다룬 정식 역사서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소설 때문도 있지만, 역사학에서는 동시대의 속 고구려·백제·신라라는 또 다른 삼국시대를 제3자의 시각에서 기록한 자료들이 담겨 있어서이다. 왜 를 앞에 두고 뜬금없이 정사 를 이야기하냐면, 이 두 책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 정식 역사서가 되는 이유는 그 주변국들의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인데, 그 대표적인 챕터가 바로 에 부록처럼 달려 있는 이다. 이 동이전에..

귀실복신(鬼室福信), 백제 부흥의 마지막 불꽃

660년 9월 5일에 백제 출신의 달솔(2품) 직급의 관리와 앳된 승려가 왜국을 찾아왔다. 이들은 바다 건너 도망쳐 와서는 고국의 사정을 왜국 정부에 다급히 알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금년 7월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왕과 신하는 모두 포로가 되었으며, 사람들도 붙잡혀 가거나 다들 흩어져버렸습니다. 이에 서부의 은솔 귀실복신은 분개하여 임사기산(任射岐山)을 차지하였고, 또 달솔 (부)여자진은 중부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에 자리잡고는 흩어진 병력을 불러 모았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랏사람들이 그들을 높여 ‘좌평(1품) 복신, 좌평 자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복신만이 신기에 가까운 무력으로 망국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귀실복신..

흑치상지(黑齒常之), 백제의 마지막 명장

660년 7월 12일, 당나라군 13만 명, 신라군 5만 명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 포위를 위해 그 앞 소부리 벌판까지 진격해왔다. 의자왕의 아들들이 당-신라 연합군 진영으로 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성을 무력으로 함락시키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굳이 항복을 받아주고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라 연합군의 거절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그날 밤 바로 태자 부여효(扶餘孝)와 극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국왕이 다른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심지어 손자마저 방치한 채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다급히 동북쪽의 군사요충지인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향했다. 당장에 포위망이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