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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LA(耽羅), la Sendependa Mara Regno

La sendependa mara regno sur la antikva insulo Ĝeĝu(濟州)TAMLA(耽羅) Redaktita kaj tradukita de Cezaro Legendo de TamlaEn la komenco de la mondo, ne estis ia homo. Tiam tri dio-uloj elteriĝis. La unua nomiĝis Jang-ulna(良乙那), la dua Go-ulna(高乙那), kaj la tria Bu-ulna(夫乙那). La tri dio-uloj ĉasis bestojn, manĝis ilin, kaj vestis sin per iliaj ledoj. Iun tagon granda skatolo vagis sur la maro kaj atingis..

Semajna Historio 2026.03.11

나당 7년전쟁(670~676), 신라와 당의 치열했던 한반도 패권 다툼

660년 백제 멸망, 663년 백제 부흥운동 실패, 668년 고구려 멸망. 7세기의 한반도는 신라가 초강대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초래한 연쇄적인 국제전으로 인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 신라가 생존을 위해 벌인 일생일대의 도박은 그 여파가 너무도 컸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고구려까지 포함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그런 의지 따위는 신라에 없었다. 이웃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대 최고 강대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당나라의 지원군은 결코 순수한 의도로 한반도의 약소국 신라를 돕기 위해 굳이 외국 영토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그 동안 골머리를 썩어온 강대국 고구려를 제압하기 위해서 그들 배후의 지원 세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

김동인의 역사 장편소설 3부작 - 견훤, 서라벌, 을지문덕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은 20세기 조선의 몰락 후 일제강점기 때 사실주의 단편소설을 쓴 엘리트 출신의 천재 소설가입니다.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으로 워낙에 유명하지만, 일제의 폭정이라는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일종의 탈출구로서 민족주의적 감수성이 담긴 중단편 역사소설도 여럿 남겼습니다. 특히나 견훤(진헌), 을지문덕, 주몽 등을 다룬 장편소설 3부작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희소성이 높고 그만의 독창적인 시대관이 담겨 있는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들입니다. 그는 가난과 병마와 싸우던 중 한국전쟁 발발 초기에 서울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만의 역사관을 한번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그의 장편소설 3부작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도서 구경하기: https://bookk.co.kr/searc..

탐라국, 초기 교류의 역사

역사는 언제나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특히나 기록이 풍부하지 못한 초기의 상황은 흐릿한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오늘날 제주라고 불리는 탐라국의 초기 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3세기 중반까지의 한반도 역사를 담고 있는 진수의 에서는 “주호(州胡)가 마한(馬韓)의 서해(西海) 가운데(中)의 큰 섬(大島)에 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으나, 서해라는 표현 하나 때문에 주호가 과연 지금의 제주를 가리키는 것이 맞는지 여전히 의문을 사고 있다. 그 다음으로 탐라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의 백제와 관련된 기록에서이다. (476년 4월) 탐라국(耽羅國)에서 토산물을 바치니 백제 문주왕이 기뻐하여 사신을 은솔(恩率, 3등급)로 삼았다.(498년 8월) 백제 동성왕이 탐라(耽羅)가 공물과 부세..

오늘날 에스페란토와 그 현실

에스페란토(Esperanto)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한 세기도 훨씬 전인 1887년에 L. L. 자멘호프(Zamenhof)가 창안한 인공어(Constructed Language, 보통 줄여서 Conlang)입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살았던 오늘날 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Bialystok)라는 도시는 4개 민족이 동시에 거주하였던 곳으로, 당연히 언어를 비롯해 너무도 다른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일쑤였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자멘호프는 인류의 평화에는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간절히 느꼈고, 이를 위해 공통 언어의 필요성을 이미 진작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여러 기존 인공어들도 참고하였고, 또 고대의 공용어였던..

Semajna Historio 2026.02.23

신라와 왜(倭), 먼나라 이웃나라

의 신라본기에는 시조 박혁거세 관련하여 신기한 기사가 나온다. 왜인(倭人)이 병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려 했는데, 시조(박혁거세)가 신령한 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 (B.C. 50년) 말도 안 되는 기사이긴 하지만 신라 초기부터 왜(倭) 즉 고대 일본과의 연관을 상징하는 내용이다.뿐만 아니다. 신라 초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아예 왜의 출신들도 은근히 있다. 석탈해(昔脫解)가 왕(尼師今)이 되었다. 이때 나이가 62세였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 1천 리에 있다.호공(瓠公)은 그 족성(族姓)을 자세히 알 수 없는데, 본래 왜인으로 처음에 박(瓠)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호공이라고 칭하였다. 더욱이 왜병의 신라 침공은 역사 ..

미친 천재 혹은 독선적 독설가, 예형(禰衡)

교묘한 말과 궤변의 소유자 예형(禰衡, 173~198)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달변이었으며 의로움을 중시 여겼지만, 한편으로 꽤나 무례하고 잘난 체가 심했으며 관습을 무시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오늘날 산둥성 서북방 출신이었는데, 조조와 여포가 격돌하였던 즈음에 20대 초반의 차이로 형주(荊州)로 피신을 떠났다가, 한두 해 지나 안정을 되찾자 조조가 헌제(獻帝)를 맞아들여 수도로 삼았던 허도(許都) 인근을 유람하게 되었다. 예형이 처음 허도를 둘러싸고 있는 영천군(潁川郡)에 왔을 때는 허도가 새로 세워지면서 온갖 사대부들이 사방에서 모여들던 와중이었다. 어떤 사람이 예형에게 물었다. “왜 진군(陳群)이나 사마랑(司馬朗, 사마의의 형)을 찾아보지 않습니까?” ..

넘치는 재치로 자신의 운명을 그르친 천재, 양수(楊修)

한나라의 명문가 출신인 양수(楊修, 175~219)는 어릴 적부터 영리하고 글 읽기는 좋아했다고 한다. 성장해서는 승상 조조의 주부 즉 비서가 되었는데, 그와 조조 간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 여럿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조조가 공사 중인 동작대를 시찰하러 나섰다가 문 앞에 멈추어 살펴보더니 그 자리에 글자 하나를 적었다. 바로 “활(活)”이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양수는 곧바로 조조의 뜻을 눈치채고는 문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해석해주었다. 이 또한 무슨 뜻인가 싶어 하는 이들에게 양수가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였다. “문(門) 사이에 활(活) 자가 있으면 곧 넓다는 뜻의 “활(闊)” 자가 됩니다. 즉 승상께서는 문이 너무 넓다고 하신 것입니다.” ..

권력 투쟁에서 밀린 비운의 천재, 조식(曹植)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서 후세까지 이름을 남겼지만,겸손하지 않은 탓에 기회를 잃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조는 아들만 25명을 낳은 삼국지 속 다산의 상징적 존재이다. 난봉꾼 기질이 다분했던 그가 그 여러 부인들 중 가장 사랑하고 개인적으로 존중하였던 인물은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 160~230)였다. 본처가 있었던 조조는 다섯 살 터울의 그녀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80년에 첩으로 먼저 받아들이는데, 이후 오랫동안 그녀의 현명한 처사를 눈여겨 보고는 기존의 본처를 쫓아내고 그녀를 정실로 삼게 된다. 조조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는 조비, 조창, 조식, 조웅의 네 명이 있었다. 조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한나라 황제의 자리까지 찬탈하게 되는 조비(曹丕, 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