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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로서의 영어와 소멸위기의 에스페란토

오늘날 세계의 국제공용어의 위치는 사실상 영어(English)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에스페란토(Esperanto)가 더 먼저 그 지위에 도전하였다고 해도 대세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 있는 상황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의 국민들조차도 해외에 나가면 어색하게나마 영어로 말하지 않으면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누가 이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모국어 화자의 규모 기준으로 본다면 영어는 중국어, 스페인어에 이은 3위에 불과(?)하지만 제2언어 화자까지 포함하였을 때는 총량에서 1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또 직간접적으로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본다면 압도적으로 영어가 1등 언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몇..

Semajna Historio 14:50:31

역사 연구를 위한 소스들

역사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자료가 많이 필요하다. 당연히 원사료와 같은 글감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진이나 지도 등 정말 많은 자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공신력과 자료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고, 더하여 저작권 이슈까지도 가급적 해결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은 이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한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 국사편찬위원회한국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가장 1순위가 되는 사이트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우리의 역사 원전 자료가 풍성하다. 뿐만 아니라 중국정사조선전(소위 25사), 일본육국사, 입당구법순례행기, 선화봉사고려도경, 원고려기사 등 각종 외국 자료도..

(발해의 여인들) La Entombŝtonoj de Balhe-aninoj

* 정혜공주와 정효공주는 둘 다 발해의 제3대 국왕인 문왕 대흠무의 딸로, 각각 묘지석이 발견되었는데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는 특징이 있다. 효의황후는 같은 문왕의 아내이고, 순목황후는 제9대 간왕 대명충의 아내이다. 두 황후의 묘지석은 발해의 국가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나, 중국에서 발견된 이래 아직까지도 전체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Ĝonghje(貞惠) Princino (738~777)Ĝonghjo(貞孝) Princino (757~792)Ŝi estas la dua filino de nia reĝo(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la reĝo Mun(文王), De Hummu(大欽茂)).Ŝi estas la kvara filino de nia reĝo(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la reĝo..

Semajna Historio 2026.03.27

(모두루묘지) La Entombŝtono de Moduru

Desaĝa(大使者, la kvara rango de Gogurjo) Moduru(牟頭婁) … La sankta reĝo, Ĉumo(鄒牟, alinome Ĝumong), kiu estis nepo de Habek(河泊, la dio de riveroj) kaj filo de Ĉielo(日月), naskiĝis en Norda Bujo(夫餘天). Do, la tuta mondo sciis, ke ĉi tiu lando estas la plej sankta.… la praavo, kiu estis subulo de la sankta reĝo, … postvenis lin el Norda Bujo. … En la regado de tiama reĝo(國𦊆上聖太王) … Jommo(冉牟) … Murong Sia..

Semajna Historio 2026.03.26

(충주고구려비) La Monumento de Gogurjo en Ĉungĝu

… En majo, la granda reĝo de Gorjo … venis orienten, esperante ke li kaj la reĝo(寐錦, “megum” en la sinla) de Sinla povus helpi unu la alian kvazaŭ fratoj. La reĝo, Gi(忌), lia tronheredonto, Gong(共), Desaĝa(大使者, la kvara rango en Gogurjo) de Fronta Departamento(前部), Dauhŭanno(多于桓奴), kaj Ĝubu(主簿, alia rango de Gogurjo), Guidok(貴德), k.t.p. venis al Gŭejong(跪營). La tronheredonto Gong diris al nia re..

Semajna Historio 2026.03.25

(광개토왕릉비) La Steleo de la reĝo Gŭanggeto

※ Ĉi tiu "..." signifas, ke la literoj sur la steleo jam neniiĝis. Iam nia fondpatro, la reĝo Ĉumo(鄒牟王, alinome Ĝumong(朱蒙)), fondis la landon. Li naskiĝis en Norda Bujo(北夫餘). Li estis filo de la patro, Ĉiela Dio(天帝, aŭ lia filo Hemosu(解慕漱)), kaj lia patrino estis filino(Juhŭa(柳花)) de Habek(河伯, la dio de riveroj). Eloviĝante, li descendis en la mondon, t.e. li estis sankta ekde sia naskiĝo. … Ki..

Semajna Historio 2026.03.24

마한(馬韓), 고조선과 한반도를 잇다

장면 #1. 2009년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졌다. 바로 전혀 도굴되지 않은 상태의 사리공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금제사리봉영기가 발굴된 것이다. 여러 놀라운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오랫동안 백제 무왕의 아내는 선화공주라고 믿어왔던 신화가 깨진 것이다. 그곳에는 무왕의 왕후가 좌평(1품) 사택적덕(沙乇積德)의 딸이라고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신화 속 선화공주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장면 #2. 무왕(武王) 조에는 서동(薯童)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연(一然)이 여기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이 전해진다. 옛 판본에는 무왕이 아니라 무강(武康)왕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로 “백제에는 무강이 없다”고 정확히 지적하였다..

부여의 후예, 두막루

723년, 두 사신단이 당나라를 방문하였다. 한쪽은 몽골의 선조로 추정되는 실위 계통의 달구(達姤)였고, 또 하나는 달말루(達末婁)라는 생소한 이름의 국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특히 후자가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소개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고구려가 북부여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유민들은 나하(那河, 타루하(他漏河))를 건너 그 북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달구는 나하의 남쪽에 있어서 동북쪽에 위치한 달말루와 가깝게 지냈기에 이번에 함께 오게 된 것이었던 모양이다. 북부여의 공식적인 멸망 시점은 346년으로, 연나라(전연)를 세운 모용선비 세력에 의해 그 국왕과 5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끌려가는 것으로 부여의 역사는 곧 종결되었다. 부여의 수많은 후예들, 이를테면 북부여 외에도 가섭원..

북국 부여, 그 길고도 짧은 역사

부여라는 나라를 알고 있는가? 들어는 보았겠지만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달리 부여의 역사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에도 부여는 등장하긴 하지만 그저 고구려의 조연 정도 역할에 그친다. 한 마디로 무플에 가까운 존재감이다. 그럼 부여의 시작은 언제일까? 에 인용된 에는 그것을 기원전 59년 4월 8일로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년 4월 8일, 천제(天帝)가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五龍車)를 타고 흘승골성(訖升骨城)에 내려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으로 일컬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자칭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하였다. 하지만 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부여는 기원전 사람인 ..

고조선과 부여, 같거나 다르거나

우리는 종종 배운 대로 기억하는 습성이 있다. 그 배운 내용도 실은 누군가가 언젠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예컨대 4대 문명이란 개념이 원래 존재하지 않는데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또 혀의 미각은 사실은 우리가 배운 것처럼 맛별로 특정 영역에만 몰려 있지도 않다. 뿐인가, 한국어를 우랄알타이어로 많이들 들었겠지만 그것은 이미 폐기된 낡은 개념일 뿐인데도 여전히 그렇게 알고 있는 이들이 태반이다. 마치 지구는 평평하다고 배운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역사에도 그러한 일들은 태반이다. 특히 상고사, 고대사에서는 그런 수많은 논쟁적인 아이템들이 있다. 오늘은 그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 한 가지를 해보고자 한다. 바로 고조선과 부여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