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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포석정(鮑石亭) 미스터리

927년 겨울 11월, 견훤의 후백제군이 신라 수도를 급습해왔다. 이때 경애왕은 왕실 구성원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 가서 잔치를 열고 노느라 적병이 이르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왕과 왕비는 달아나 후궁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일가친척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적에게 사로잡힌 자들은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며 넙죽 엎드려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견훤은 병사들을 풀어서 온갖 재물을 약탈하게 하고, 자신은 궁궐을 차지하고는 달아난 왕을 찾아오게 하였다. 왕은 후궁에 있다가 이때 군영으로 잡혀와서는 자결을 강요받았다. 이것이 대략적인 견훤의 신라 급습 사건의 전말이다. 한 나라의 국왕을 시해하고 새로운 정부로 싹 갈아엎어버린 것은 물론, 이 직후에 뒤..

고려의 황제 궁예(弓裔)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승자의 기록이다. 영화 『짝패』의 명대사,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옳다. 결국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다. 역사에서는 그렇게 라스트 맨 스탠딩(Last Man Standing)만 기억해준다. 오랜 격언 그대로 최후의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지는 법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승자를 위협하였던 경쟁상대였다면 더더군다나 매장당해 마땅하다. 그런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궁예(弓裔)이다. 어떤 서양 학자가 잘 묘사하였다시피 크게 세 가지 인간군상이 있다고 했을 때, 좋은 놈은 태조 왕건(王建), 나쁜 놈은 후백제의 견훤(甄萱), 그리고 이상한 놈에 해당하는 것이 곧 궁예이다. 원래였다면 ..

『나의 외국어 학습기』 - 어느 고전 전문가의 다개국어 독파 이야기

나는 저자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력을 보니 깜짝 놀라긴 했다. 그가 할 줄 아는 언어만 해도 우리말을 제외하고, 한문,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가 있다. 한문은 중국어와 다르니 별도로 카운트함이 옳겠다. 부럽기 짝이 없는 워너비 다개국어 사용자이다. 여하튼 그가 번역한 책들도 유명하니 관심 있는 분은 찾아보면 좋겠다. 여하튼 이 책 자체도 참 재밌게 썼다. 어렸을 적 일화부터 대학교 때 외국어 공부하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참 많다. 한번 읽어볼 만하다. 각 언어를 도장깨기 하듯 고통스럽게(?) 익혀나가는 그 과정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언어 학습이란 모름지기 고통스러운 게 당연하다. AI가 언어를 학습하는 방법을 아는가? 그냥 주구장창 수도 없이 많은 글자 자료들을 읽고 또 읽는..

(신간) 알마(Alma) - 에스페란토

이 책 덕분에 1백 년도 더 전에 유럽의 젊은 여인이 혼자서 전세계 여행을 하였고, 그때 마침 우연히 일제 치하의 한국까지 방문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마 카를린입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였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그 당시 아무도 상상치 못했던 말도 안되는 세계 여행을 감행한 대단한 여인의 일대기입니다. 심지어 10개 국어를 하였다고 할 만큼 진정한 언어 천재였던 인물입니다. 국내 유일의 에스페란토 전문출판사인 진달래에서 모처럼 내놓은 신간입니다. 1백 년 전 우리 역사와도 인연이 있는 한 용기 있는 모험가의 인생을 짤막하게 다룬 그림책을 추천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예쁜 삽화가 특히 눈에 띄는 아름다운 책입니다.

Semajna Historio 2026.08.05

(신간) VIVO (en Esepranto)

모처럼 색감 예쁘고 내용도 귀여운 그림책 하나를 만나보았습니다. 우연히 발견하여 해외에서 산 책인데, 어렸을 적 추억(?)도 떠오르고... 양도 적절히 많지 않으면서 짧지 않게 설명해주는 나름 아름다운 그림책이었습니다. 에스페란토 학습자 대상으로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표지의 개구리처럼 보이는 건 사실 두꺼비(bufo)더라고요. 참고 바랍니다.) * 왜 제목이 vivo인지, morto가 아닌지는 본문에서 확인해보세요.

(신간) 조선의 4대 의적 박장각(朴長脚)

조선의 3대 의적 하면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을 꼽습니다. 그리고 각각 허균과 홍명희, 그리고 황석영에 의해 모두 소설화가 되었습니다. 모두 다 지금 다시 보아도 재밌는 작품들입니다. 조선의 로빈훗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당연히 한국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일제강점기 『개벽』이라는 잡지의 편찬인으로 유명했던 차상찬(車相瓚)이 단편소설로 박장각, 일명 박장다리라는 의적을 추가하였습니다. 여느 의적처럼 이 인물 또한 미지의 존재이긴 합니다. 실제로 역사기록상으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작작가였던 차상찬은 그의 이름을 빌어 조선시대 의적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차상찬의 잡지 『개벽』은 에스페란토 제목 "La Kreado"를 병기하였을..

Semajna Historio 2026.08.05

고대와 근대 사이, 왜 중세만 중세(中世)인가?

역사를 구분짓는 가장 보편적인 틀은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값이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더 기본적이면서 누구나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프레임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의 학문이기 때문에 시대로 구분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기준은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잘 보면 튀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중세이다. 왜 중세만 굳이 ‘-世(세)’인 것일까? 나머진 모두 다 고대, 근대, 현대 등 ‘-代(대)’로 끝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미묘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러한 시대적 구분의 시초가 되는 서양의 용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영어에서는 각 시대를 형용사로 이렇게 부른다. 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