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역사가 말해주는 결벽증의 위험성

위클리 히스토리 2026. 7. 14. 14:21

예전 어떤 TV프로그램에서 모 연예인의 아내가 자식들을 외출시킬 때 손에 비닐장갑같은 것을 씌우는 모습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결벽증(潔癖症)이었다.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도 되나 순간 내가 다 걱정이 되었다. 이는 병적으로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영어로는 mysophobia라고 하는데, 그리스어의 불결과 공포증의 합성어이다.

 

적절한 위생관념은 물론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하였던 산욕열은 비위생적인 병원환경이 산모에게 치병적인 문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즉 일부러 더럽게 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살균처리된 환경에서만 자라나면 생활에 필요한 면역력을 갖출 기회 자체가 박탈당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극단적 케이스이지만 AIDS같은 면역결핍증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면역이 중요한지를 잘 알 수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결벽증이 개인 생활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벽증이 정치적으로 발현되어 사회 전체적으로 작동될 때, 매우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캄보디아에는 킬링 필드(Killing Fields)라는 악명 높은 말이 남아 있다. 극단적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이에 벗어나는 이질적인 구성원들을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솎아낸 비참한 대학살 사건이다. 주인공인 폴 포트는 나름 외세에 대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력도 있지만 자신이 집권한 이후 과도한 이데올로기에 빠져 1970년대 후반 동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학살하는 짓거리를 벌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최소 수십 만, 최대 2백 만에 달하는 국민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킬링 필드의 잔재 - Wikipedia

 

중국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66년부터 시작하여 마오쩌둥이 사망하는 1976년까지 약 10년 동안 지속된 이 문혁 역시 공산주의라는 완전무결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국 인민을 상대로 그 사상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들을 강제적으로 숙청해버린 희대의 사건이었다. 문혁 종료 후 분위기가 바뀐 이후에는 이를 배경으로 한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넷플리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SF소설인 삼체(三体)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반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은 수시로 일어났다. 이를테면 제주 4.3도 그렇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과 서북청년단 등의 공동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제도 사회가 규정한 틀을 벗어난 이들을 강압적으로 탄압하면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었다. 뿐이랴, 이 이후로도 개개인 단위로는 기록으로 남지도 못한 수많은 이들이 사상의 프레임에 걸려 숙청당하고 제거되었을 텐데, 그저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뿐이다.

 

결벽증은 위험하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와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모두 다 제거해버리고 다 똑같은 사람들만 남기고자 하는 정치적, 사회적 결벽증은 특히 더욱 그렇다.

 

흥미롭게도 자유주의자, 즉 정치적 자유주의인 민주주의자나 경제적 자유주의인 자본주의자나 모두 한결같이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임에도, 여전히 나와 다름에 있어서는 사상과 별개로 병적인 결벽증을 보일 때가 있다. 사실 진화론에서는 이질적인 변종들이 전체적인 진화를 촉발시킨다고 보는데, 결벽증에 빠진 인간들만 이와는 거꾸로 가는 이상현상을 보인다. 균질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함이 인간의 기본 본성인가 싶을 정도이다. (정설은 아니지만 이를 이질적 존재가 끼칠 지도 모르는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는 이론의 생물학적 진화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혹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문제라는 뜻이다. 아리아 순혈주의를 설파했던 독일 나치의 히틀러도 그러했고, 흑인 혹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했던 미국 내지 호주도 그랬고, 자신의 조상들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팔레스타인 차별을 시전하고 있는 오늘날 이스라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름을 참지 못하고 이질에 대한 제거의 욕망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국 그것은 인간 자체에 대한 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는 나의 자유와 남의 자유를 동시에 인정하는, 즉 기본적으로 서로 다름에 대한 인정을 기반으로 한 사상체계이다. 스스로 “자유”를 말하면서 나와 다름이 껄끄럽게 여겨진다면,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른 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결벽증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나의 사상적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의 똑같은 자유를 인정해야만 한다. 그게 자유주의의 기본이다. 생각으로도, 외양으로도, 그 어떤 조건으로도 나와 다름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고로 결벽증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정신적 질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