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신간) 내 안의 유인원

위클리 히스토리 2026. 7. 4. 16:47

 

빅 히스토리 차원에서 보자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지금의 인류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인간의 문명의 역사만 놓고 보자면 심지어 불과 수천 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자기들끼리 복작복작거리면서 지내온 게 전부이다. 이 문명조차도 크게 구분하자면 싸움이 최소한 그 절반은 차지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계통상 공격적인 성향으로 유명한 침팬지(Chimpanzee)와의 유전자 일치율이 2%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번 싸움만 지지고 볶고 했어야 할 텐데, 재미있게도 인류의 역사는 또한 평화와 공존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또한 유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바로 보노보(Bonobo)의 존재 덕분이다. 한때 피그미 침팬지라고도 불렸던 이 보노보는 이제는 침팬지의 일종이 아니라 정식으로 별도의 종으로 독립시켜 바라보고 있는데, 평화로운 사랑꾼의 성향이 강한 게 이들이다.

 

과학적으로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활용해보자면,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는 침팬지와, 그리고 이타적 유전자는 보노보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이를 성악설과 성선설로 구분지어 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정확한 구분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인간의 두 가지 성향을 나눠서 볼 때는 도움이 되는 측면도 분명 있다. 그만큼 인간이 갖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성격을 이 두 종이 양극단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뿐인가, 정치적 영역에서 인간들을 크게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누는 것도 그 유래는 우리의 유전자만큼이나 아주 오랜 것이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보면 각각 매파와 비둘기파가 왜 존재하는지를 이들이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나이들 때까지 어느 정도의 공격성을 보인다. 사전에 있지 않은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이를테면 살해, 전쟁, 폭력 등은 그 행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단어로 당당히(?) 등재된 것들이다. 학교의 학폭 문제나 왕따 이슈, 군대 내의 온갖 가혹행위, 심지어 책임 있는 어른들이 사는 사회에서도 각종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혹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되는가? 예를 들어보자. 성차별은 전통사회부터 아주 오랜기간 어머니들이 아들들을 전담하여 키워왔음에도 단 한 번도 없어진 적이 없다. 교육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모종의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오랫동안 악명 높은 시집살이를 시켜온 것은 같은 고통을 겪어본 동성의 시어머니였다. 자신이 안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중에 자신이 반복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의 본성 안에는 정말로 우리가 ‘이성’의 영역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피한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이럴 때 그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바로 이웃한 비슷한 사례였다. 바로 가까운 유인원들이 그렇다. 특히나 침팬지들은 인간이 갖는 수많은 공격성과 이해하기 어려운 비이성적 행동들을 잘 설명해주는 존재이다. 서열 다툼과 권력에 대한 경쟁 구조 등은 침팬지 사회를 묘사한 글만 읽어보아도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렇다면 인간은 결코 개선하기 어려운 정도의 비이성적 존재인가 의구심이 들 만도 한데, 다행히 우리 안에는 한 쪽의 유전자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보노보는 그에 비해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더욱이 수컷이 지배하는 침팬지 사회와는 정반대로 암컷 중심의 모계 사회가 일반적이다. TV에서 매일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사회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돌려 무척이나 평온한 전원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한 인간 안에도 이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긴 하지만,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잘 이해하고 미연에 통제하는 수밖에.

 

이 책은 두 종류의 유인원을 깊이 있게 보여주면서 우리 안의 유인원적 성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도 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지만, 나를 대신 보여줄 외부의 거울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우리를 들여다보고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정말 필요한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