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르마니아(Germania)>에 앞서 먼저 한 가지만 보고 넘어가자. 위나라의 뒤를 이은 진나라의 관리 출신인 진수(陳壽)가 위·촉·오의 삼국시대가 끝난 3세기 후반에 쓴 책이 바로 <삼국지(三國志)>이다. 소설 <삼국지> 때문에 매번 정확히 구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삼국시대의 역사적 인물들과 당시의 각종 사회상을 다룬 정식 역사서이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소설 때문도 있지만, 역사학에서는 동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속 고구려·백제·신라라는 또 다른 삼국시대를 제3자의 시각에서 기록한 자료들이 담겨 있어서이다.
왜 <게르마니아>를 앞에 두고 뜬금없이 정사 <삼국지>를 이야기하냐면, 이 두 책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가 정식 역사서가 되는 이유는 그 주변국들의 상황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인데, 그 대표적인 챕터가 바로 <위서(魏書)>에 부록처럼 달려 있는 <동이전(東夷傳)>이다. 이 동이전에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 부여, 삼한, 옥저, 읍루 등 다양한 국가 내지 부족들이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들 민족의 문화와 관습, 전통 등 온갖 정보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즉 이 책은 중원의 한족 역사가가 바라본 동북아 지역의 이민족에 대한 정보의 보고인 셈이다.
그리고 비유하자면 <게르마니아>는 이 <삼국지 동이전>의 유럽 버전쯤 된다. <게르마니아>를 쓴 저자는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라는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가 겸 역사가이다. 나름 원로원 의원까지 했다고 하니 사회의 최상층까지 올라갔던 인물이다. 그만큼 로마라는 국가를 좀 더 멀리 내다보는 동시에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로마 황제의 일대기를 기술하기도 하는 반면에 로마 사회가 갖는 한계도 느끼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정리할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게르마니아>는 비교 역사학의 텍스트로서 탄생하였다.
<게르마니아>는 이렇게 시작한다.
게르마니아는 갈리족, 라이티족, 판노니족과는 레누스강과 다누비우스강으로, 사르마타이족, 다키족과는 산맥과 서로를 향한 경계심으로 갈라져 있다. 나머지 지역은 넓은 만과 커다란 섬들을 품은 대양이 둘러싸고 있다. 그곳에는 최근에야 전쟁을 통해 알려진 몇몇 부족과 왕들이 산다.
그리고는 게르마니아의 유래와 신화, 외모, 지형, 무기, 가족, 여성, 종교, 형벌, 주거, 의복, 결혼, 법률 등 문화적 특성들이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여러 부족들을 차례대로 나열하면서 설명하고 끝을 맺는다. 그 형식이 너무도 <삼국지 동이전>과 닮아 있다는 데에서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
<삼국지 동이전>의 서문을 발췌해서 요약해보면 이렇게 된다.
… 후에 고구려가 배반하여 군대를 보내 토벌하면서 멀리까지 추격하니 … 동쪽으로 큰 바다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두루 관찰하고 그들 나라의 법령과 습속을 수집하여 나라의 크고 작음의 구별과 각국의 명칭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가 있었다. … 그 나라들을 순서대로 기술하고 그 같고 다른 점을 열거하여 이전 역사의 미비한 점을 보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부여, 고구려부터 삼한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위치와 사회, 풍속, 산물, 장례, 혼인, 무기, 법률, 역사 등이다. 마치 <게르마니아>가 유럽 동북부의 수십 개 민족들을 나열하면서 기술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구성이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타키투스는 로마 사회의 타락과 비교하여 게르마니아의 순수했던 전통적 모습을 부각시키는 방식이었다면, 진수는 중원에서 사라진 과거를 동이 지역에서 되찾고자 하였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역사서적의 현대적인 활용에서도 은근히 공통점이 엿보인다. <게르마니아>는 원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엉뚱하게도 게르마니아 지역의 후예인 히틀러와 나치에 의해 순수 아리아인의 원천으로서 부활하여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것이 결국 이민족 탄압과 인종 청소라는 최악을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와는 방향은 반대이지만 결과는 비슷하게도, <삼국지 동이전>은 오랜기간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우월의식을 심어준 것은 물론, 일제의 식민지배 때까지도 영향을 미쳐 피지배 근성을 지닌 한민족이라는 허상의 근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원저작자와 텍스트 자체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항변할 일이지만, 누군가는 그 텍스트의 글자와 문구 그대로를 나름의 사적 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오용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것이 낳은 것은 역사적 비극이지만 말이다.
그나마 한민족을 위해서 다행이라고 한다면, <삼국지 동이전>이라는 텍스트가 동이족의 후예인 한민족이 타민족에 대한 정복자로서의 악용을 위한 근거로 활용되지는 않았다는 점일 듯하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으로 어이없지만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일본서기(日本書紀)>가 한반도 침공을 위한 역사적 대의명분이 되었던 사례가 있다. 내가 피해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마음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해자가 되는 것 역시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게르마니아>는 천병희, 박광순 등의 다른 번역본도 시중에 나와 있으며(전자책도 있다), <게르마니아> 오독의 역사를 다룬 <가장 위험한 책>도 출간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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