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홍길동전(洪吉童傳)을 허균(許筠, 1569~1618)의 작품이라고 확신하는 이는 사실 별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증거가 워낙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허균의 홍길동전이라고 배우고 자라온 세대에게 이 사실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이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우선 허균 자신이 홍길동전을 스스로 지었다는 기록을 남긴 게 없다. 그리고 당연히 후세에 정리된 허균의 문집 어디에도 홍길동전과 관련된 언급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오늘날 남아 있는 홍길동전의 여러 판본에도 저자 이름으로 허균이 적혀 있지 않다. 더욱이 동시대인들 누구도(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허균의 홍길동전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허균은 50세 무렵에 반란 획책을 이유로 처형당하고 마는데, 그토록 잔혹하게 고문하면서 조사할 때에도 그의 홍길동전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정황상 그가 정말 홍길동전의 실제 저자인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그를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의외로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의 나름의 창의적인 한국문학에 대한 공부의 결과와 함께 우리들의 민족주의 정신이 오묘하게 결합된 결과라는 것이 이윤석 교수의 분석이다. 특히 전자가 중요한데, 이를 촉발시킨 인물은 다카하시 도루였고, 이를 이어받은 것이 그의 제자였던 김태준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로 허균을 지목하였던 것일가? 여기에는 앞서 단 한 명의 예외였던 인물의 언급이 결정적이었다.
《택당집(澤堂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이식(李植, 1584~1647)의 문집인데, 여기에 바로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수호전》을 지은 사람의 집안이 3대 동안 농아(聾啞)가 되어 그 응보(應報)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도적들이 바로 그 책을 높이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허균과 박엽(朴燁) 등은 그 책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적장의 별명을 하나씩 차지하고서 서로 그 이름을 부르며 장난을 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허균은 또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을 짓기까지 하였는데, 그의 무리인 서양갑(徐羊甲)과 심우영(沈友英) 등이 소설 속의 행동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다가 한 마을이 쑥밭으로 변하였고, 허균 자신도 반란을 도모하다가 복주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농아보다도 더 심한 응보를 받은 것이라고 하겠다.
이 이식은 바로 허균과 동시대를 살았던 현장 증인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가 곧 홍길동전은 허균의 작품이라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심지어 그 내용이 의적들의 이야기인 《수호전》과 닮아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실제로 오늘날 전해지는 홍길동전의 분위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왜 홍길동전은 허균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였던 것일까?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이름이 같다고 과연 실체도 같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에도 왕건이 있었고 고려에도 왕건이 있었는데, 이름은 같지만 그 둘이 같은 인물이 아닌 것과 매한가지이다. 게다가 정황상 당대의 대학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던 허균이 살아생전에 굳이 한글(!)로 소설을 써야 할 이유가 있었냐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하나는 허균이 이식의 말마따나 한문 소설을 썼고 그것을 참고하여 조선 후기에 누군가 한글로 번역하였을 것이라는 가설, 또 하나는 허균의 소설은 시대를 지나며 유실되었고 전혀 상관없이 조선 후기의 누군가가 창의적으로 홍길동전을 집필하였을 것이라는 가설이 그것이다.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할까? 당연한 얘기지만 확실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를 확인할 길은 없다. 학자에 따라서 다 제각각이라고 봄이 맞을 것이다.
여하튼 논리적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허균이 맞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전자는 한글 소설의 작자가 분명해질 때까지는 입증이 안 되고, 후자는 허균의 한문 소설이 발견되어야지만 확정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허균의 작품인지 여부는 단정지을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홍길동전은 여전히 재밌다. 어렸을 적 읽던 동화 버전의 홍길동전도 물론 재미있지만, 원작 홍길동전 역시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꽤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것이 얼마나 현대인들에게도 어필될 수 있는지는 지금까지도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번안 소설들을 봐도 알 수가 있다. 심지어 홍길동전은 구한말 우리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호러스 뉴튼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1932)도 19세기 말에 영어로 옮긴 바가 있고, 또한 21세기 들어서도 독일어 번역본이라든가 세계적인 출판사인 펭귄(Penguin)에서 한글 번역과 영어 번역 두 버전 다 내놓은 적도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것을 보면 원작 홍길동전이 갖는 본질적인 재미가 자연스럽게 증명된다. 여기에는 저자가 누구이건 상관이 없어 보인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 참고자료 : 《택당집》(한국고전종합DB),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이윤석, 한뼘책방, 2018), 《허균 - 자존의식과 이상향 추구》(김현룡, 건국대학교출판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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