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제멜바이스의 역설, 암세포는 자기가 암세포인 줄 모른다

위클리 히스토리 2026. 7. 13. 12:22

19세기는 과학의 세기였다. 수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으며, 온갖 의학적 지식들이 체계를 갖춰나가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에 있던 산모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산욕열(産褥熱, puerperal fever) 때문에 고생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는 오히려 과학의 세기 이전에는 드물었지만 19세기 들어 급증하였던, 특히 병원에서의 발병률이 높았던 이상 현상이기도 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여러 억측만 난무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과학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그나츠 제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1865)라는 헝가리 출신의 의사였다. 이 희한한 증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그는 나름의 연구 끝에 그 이유를 밝혀냈다. 다름 아닌 병원 내의 “의사”가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시체 해부도 하면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렇게 해부학 실습을 한 다음에 그 상태 그대로 산부인과로 와서 산모 치료까지 담당하였다는 것이었다. 즉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소독”의 개념이 그 당시 의사들에게는 없었던 것이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었던 셈이다.

 

 

그가 제안한 손 소독만으로도 이 산욕열은 거의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결말로 나아가지 않았다. 심정적으로 자신들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당대의 많은 의사들은 제멜바이스에게 대놓고 반발하였고, 그는 고생 끝에 나중에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으로 생이 다하고 말았다. 산모들의 구세주였던 인물의 말로 치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결말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제멜바이스 효과” 내지 “제멜바이스 현상” 등의 말도 만들어졌다. 자신이 알고보니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의 맹목적인 거부감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용어이다. 제멜바이스 본인도 문제의 원인을 결국 밝혀내었지만 스스로도 그렇게 잘못된 상식으로 얼마나 많은 산모들을 위험과 심지어 죽음에 처하게 했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나마 본인의 잘못을 시인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의 소유자였지만, 그의 주변인들까지 모두가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알고보니 나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든 일이다.

 

우리 사회에도 언제나 그런 제멜바이스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마치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리는 이들을 의외로 꽤 많이 볼 수가 있다. 고정관념 내지 편견은 인간의 본질적 특성처럼 보일 정도이다. 특히나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도 양보도 없다.

 

가끔 하는 말이지만, 암세포는 자기가 암세포인 줄 모르고 그렇게 자가증식에 열을 올린다. 사회적으로도 해악이 되는 사람을 암적인 존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상이 되는 이들은 자신이 왜 암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알면 그러지 않을 테고, 모르니 그러는 것일 테니 말이다. 문제는 누가 암인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암은 자신이 암인지 모른다지만, 암이 아닌 세포조차도 엄밀히 말해 자신이 암인지 아닌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게 논리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는 다수결로도 정할 수가 없다. 오히려 다수가 암인 경우도 드물지만 불가능하지 않으니 말이다. 다수가 잘못된 판단으로 잘못된 정치인을 선출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봐 오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봐 나갈 것이다. 그것은 슬프지만 (혹은 비극적이지만) 인간이 갖는 불가피한 한계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