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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발해, 고려... 그 사이의 경계인들

오늘날의 국경선은 상당히 엄격하고 철저하게 관리된다. 국가를 이루는 3대 요소로 통상적으로 영토, 국민, 주권 이렇게 세 가지를 드는데, 실제로 그 중 하나인 영토가 곧 현대 국가들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기에 세계의 온갖 곳에서 땅(혹은 바다까지)을 가지고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 고대와 중세 국가들은 어떠했을까? 재밌는 것은 오늘날의 국경선, 즉 선으로서의 국경 구분은 정말 근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이다. 사실 과거에는 선이 아니라 면으로서의 국경지대가 존재했을 뿐 오늘날처럼 국경 검문소같은 두 국가가 딱 마주서서 선을 긋고 관리하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DMZ처럼 너른 중간영토가 일종의 국경선 역할을 하였는데, 이 또한 정확하진 않은 것이 왜냐하면 서로 ..

Antikvaj Poemoj en Koreio

En Samguksagi kaj Samgukjusa, kelkaj antikvaj poemoj troviĝas. Iom estas Hansi(漢詩), kiu estas skribita per ĉina-literoj, aliaj estas Hjanga(鄕歌), kiu estas skribita laŭ la propra skribsistemo de antikva koreio. Gonhuin(箜篌引) aŭ Gonmudohaga(公無渡河歌) en Pra-Ĝoson(古朝鮮) Kara, ne transiru la riveronFine vi transiris la riveronKaj li dronis en la riveronKiel mi zorgus mian karulon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Or..

Semajna Historio 2025.12.26

고려의 서경과 발해유민 이야기

역사서에는 전후 사정과 무관하게 뜬금없이 한 줄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광종(光宗) 25년차의 다음 기록이 그렇다. (974년) 이 해에 서경(西京)의 거사(居士) 연가(緣可)가 반역을 꾀하다가 처형당하였다. 이 기사 전에는 과거 합격 기록이, 다음해에는 광종의 사망 기사가 전부이다. 도대체 전후 문맥 상관없이 나와 있는 이 기사에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처럼 너무 바로 앞의 상황에 매몰되어서 전체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아예 저 멀리서 현재를 조망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약간 시야를 넓혀서 동시대를 바라보자. 이 무렵 재밌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미리 약간만 스포하자면 발생 장소는 당시 거란의 요나라 영토로 귀속되어 있던 옛 발해의 부여부(扶餘府)가 있던 곳이다. ..

동방의 베네치아, 백제의 해외 진출

백제의 시작은 부여였다. 처음에는 저 멀리 북부여 출신의 구태(仇台)라는 이가 이끄는 한 일파가 졸본 지역에 정착하였다. 후에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 세력의 남하로 기존 세력인 비류와 온조가 재차 더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삼한 중 가장 강력했던 마한(馬韓) 영토에서도 옛 대방의 땅이라고 불린 북쪽 지역에 처음 정착하였던 것이 백제 역사의 시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초기 역사는 조선시대의 실록같은 자료가 있을 리 없이 때문에 불확실과 혼돈 그 자체이다. 그러나 대략적으로는 비류의 미추홀과 온조의 위례성의 생존 경쟁에서 좀 더 환경에 잘 적응한 온조 측이 비류의 세력을 흡수함으로써 백제의 역사가 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도 처음에는 마한의 54개 국 중 하나(이때만 해..

주몽의 진짜 이름은?

의 고구려본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은 성이 고(高)씨이고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주몽이라는 이름은 여기뿐만 아니라 , 같은 우리쪽 역사서는 물론이고, , , 등 중국측 역사서에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또한 그의 이름의 유래 역시 그 자료들에서 공통적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부여말로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는 까닭에 그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이 순서는 참으로 이상하다. 태어날 때의 이름이 주몽이었는데, 그 이름이 그가 활을 잘 쏴서 주어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듯한 느낌이다. 그의 이름은 원래 다른 것이었는데, 성장하여 명사수의 자질을 보이자 별칭으로 주몽이 된 것이라는 해석이 좀 더 합리적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이름이 주몽으로 정해진 것..

백제와 미추홀, 제3의 부여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의 이야기와 그의 아들 온조가 백제를 세운 사실 정도는 대개 알고 있다. 이를 실제 역사기록에서 찾아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고구려의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高朱蒙, 기원전 58~기원전 19)은 북부여에서 예(禮)씨 부인을 얻어서 살다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부여를 떠났다. 그리고는 기원전 37년에 22세의 나이로 졸본(卒本)의 비류수(沸流水) 가에 정착하였다. 그곳에서 졸본부여 혹은 비류국(沸流國)의 왕 송양(松讓)의 세 딸 중 둘째와 결혼하였다. 얼마 후 졸본부여의 왕이 사망하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그렇게 기존 세력을 흡수함으로써 고구려 건국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주몽은 그곳에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는 비류(沸流), 둘째는 온조(溫祚)였다. 그런데 부여에..

Gansu(强首), la Frutempa Kleristo de Sinla

Gansu estis de Ĵunŭongjong(中原京, nuna Ĉunĝu(충주) urbo). Lia patro estis Sokĉe(昔諦), kies rango estis Nama(奈麻, la dek unua el oficaj rangoj de Sinla) en Sinla. Iam la patrino de Gansu sonĝis pri homo kies kapo havis kornon, poste ŝi gravediĝis kaj naskis la bebon kiu havis altan oston sur la dorsokapo. Sokĉe kunprenis sian filon al tiama saĝulo. “Ĉi tiu knabo havas tian kranion. Kion vi pensas?”..

Semajna Historio 2025.12.17

보장왕, 고구려와 발해 그 사이

668년 가을 9월, 드디어 당나라의 원정군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포위한 지 한 달도 넘게 걸려 가까스로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정군의 실력이라기보다는 고구려의 내부 분열이 더 큰 원인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666년에 연개소문의 세 아들 중 맏이 연남생(淵男生, 634~679)에 대항해 둘째와 셋째 아들이 평양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이번 전쟁을 야기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둘째와 셋째가 고구려의 마지막 국왕인 보장왕(寶藏王) 고장(高臧, ?~682)을 붙잡고 평양성에 틀어박혀 최후의 저항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평양성 포위가 한 달이 넘었을 때 이제는 패전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한 보장왕이 셋째 연남산(淵男産, 639~701)을 설득해 수령 ..

을지문덕과 다문화사회 고구려

우리가 을지문덕에 대해 그나마 들어서 아는 것이라고는 살수대첩 하나뿐이다. 워낙에 탁월한 전략운용이 돋보이는 작전이어서 그런지 기록들을 차분히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직접 느껴볼 수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그가 정말로 평양 석다산(石多山) 출신인지도 불분명하다.심지어 그의 성씨가 을(乙)인지, 을지(乙支)인지도 명확치 않다. 그가 을씨라고 보는 쪽은 고구려 역사 초기에 등장하는 을씨 재상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국상 을파소(乙巴素, ?~203) - 제9대 고국천왕(179~197) 때좌보 을두지(乙豆智) - 제3대 대무신왕(18~44) 때대보 을소(乙素) - 제2대 유리왕(B.C.19~A.D.18) 때하지만 3세기를 마지막으로 을씨는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