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동방의 베네치아, 백제의 해외 진출

위클리 히스토리 2025. 12. 22. 10:34

백제의 시작은 부여였다. 처음에는 저 멀리 북부여 출신의 구태(仇台)라는 이가 이끄는 한 일파가 졸본 지역에 정착하였다. 후에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고구려 세력의 남하로 기존 세력인 비류와 온조가 재차 더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삼한 중 가장 강력했던 마한(馬韓) 영토에서도 옛 대방의 땅이라고 불린 북쪽 지역에 처음 정착하였던 것이 백제 역사의 시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초기 역사는 조선시대의 실록같은 자료가 있을 리 없이 때문에 불확실과 혼돈 그 자체이다. 그러나 대략적으로는 비류의 미추홀과 온조의 위례성의 생존 경쟁에서 좀 더 환경에 잘 적응한 온조 측이 비류의 세력을 흡수함으로써 백제의 역사가 시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도 처음에는 마한의 54개 국 중 하나(이때만 해도 한자만 약간 다른 백제(伯濟)라고 하였다)에 불과하였기에 <주서>같은 책에서는 마한의 속국이었다고까지 표현하였다. 이 당시 하나의 나라라고 해봤자 기껏해야 1만 가구가 넘으면 큰 나라라고 하였다는데, 백제는 나중에 가서는 마한 전체를 석권하였고 그렇게 수도에만도 1만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멸망 당시에는 무려 76만 호라는 규모까지 성장하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과정에서 백제가 한반도가 아닌 해외로까지 영토 확장을 꾀했다는 외국의 기록들이 있다는 점이다. <양직공도>에 따르면 이때가 진나라 말이라고 하니, 아마도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초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위치는 다름 아닌 요서 지역이었다.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晋平郡) 진평현(晋平縣)이라 한다. (송서)

 

구체적 명칭까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냥 허투루 전해지는 기록은 아닐 것이다. 처음 시작은 한 곳이었을 수 있으나 조금더 후대의 기록을 보면 좀 더 영토 확장을 이루었던 것 같다.

 

백제 역시 요서, 진평(晋平)의 두 군(郡)의 땅을 점거하여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 (양서, 남사)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수서>와 <당서>에서는 이 기록이 사라지기 때문에 아마도 그 전에는 철수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그렇다고 단순히 철수로 끝은 아니었던 듯 추가적인 기록들이 또 이 다음에 등장한다.

 

동북으로는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 오늘날 저장성 샤오싱(紹興) 부근으로 상하이 아래)에 이르며,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국(倭國)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고구려에 이른다. (구당서, 신당서)

 

이를 전하는 역사서는 당나라의 기록에 기반한 것인데 백제의 본토를 정복하고 이웃나라 신라와도 격전을 벌였을 만큼 한반도 상황에 빠삭하였던 이들이 기록한 것이었던 만큼 신뢰도는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너무도 분명히 백제의 해외 영토를 기재하고 있다보니 믿기 어려운 부분도 솔직히 있지만 어쨌거나 이를 바탕으로 대략 위치를 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은 했을까? 불가능하진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백제는 오랫동안 담로(檐魯)라는 행정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22개까지 운영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이 이름이 붙은 지역은 의외로 한반도 내 백제 본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다면 추정컨대 해외 영토를 담로라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던 것이 아닐까 자연스레 짐작해볼 수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를 백제 말의 명장 흑치상지(黑齒常之)의 묘지명 기록을 통해 찾아보자.

 

그 조상은 부여(扶餘)씨로부터 나왔는데, 흑치(黑齒)에 봉해졌기 때문에 자손들이 이를 성씨로 삼았다.

 

여기서의 흑치 즉 흑치국(黒齒國)은 위치 미상이긴 하나, 중국 고대의 신화 속에도 등장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역사서에 정식으로 기록된 지역명이기도 하다. 신화를 걷어내고 조금 더 실체적인 모습을 찾아보면, 가깝게는 바로 옆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오하구로(お歯黒, おはぐろ)라고 하는 매우 오랜 전통인데, 근대까지도 존재했던 이를 검게 물들이는 문화였다. 물론 비슷한 문화가 동남아시아까지 널리 뻗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흑치국의 위치를 특정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여하튼 백제 흑치씨 집안의 봉지였다는 정보를 참고하면 백제 왕가의 종족들이 다스렸다는 담로라는 제도가 혹 백제의 해외 거점을 다스리는 목적의 행정제도가 아니었을까 짐작은 해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는 이런 해외 거점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곧 백제 역사의 미싱 링크인 부분인데, 이 때문에 보수적인 학계에서는 백제의 해외 진출은 거짓이라고 단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가 사실을 과대포장하는 일은 많이 있어도 남이 나를 위해 대신 없는 사실을 지어내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간혹 백제인들이 외국에 가서 블러핑을 한 것이 중국측 기록에 남은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나, 이 또한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상대방도 결코 바보가 아닌데 멀쩡히 저들이 나와 가까운 혹은 나와 연이 깊은 지역을 차지하였다고 하는데 그게 맞다고 순진하게 기록해주었다는 것도 참으로 허황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생각을 열어 놓고 해석을 해보자면, 백제의 멸망과 함께 그와 같은 해외 거점들에 대한 기록이 유실된 것은 아니었나 기본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특히나 <삼국사기>의 경우 신라나 심지어 고구려에 비해서 말 그대로 백제의 기록은 정말 소략하기 그지 없는데, 당황스럽게도 수년씩 기록이 없는 기간도 부지기수이다. 그만큼 대대로 역사적인 관심을 못 받은 게 백제인데, 본국의 역사가 그럴진데 한시적으로 해외에 거점을 마련하였던 기록들이 과연 제대로 전해졌을까 의문이 아니 들 수가 없다.

 

더욱이 해외 거점이라는 곳들이 면이 아니라 점에 준하는 거점들이었다면 기록이 소략하기는커녕 남기 어려운 환경이었었지 않을까 추측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듯하다. 예컨대 장보고 시대의 신라방(新羅坊)을 떠올려보자.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당나라의 해안가에 존재하였던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 말이다. 이 역시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다행히 동시대 일본인의 제3자의 눈으로 기록이 전해진 좋은 케이스이다. 또는 좀 더 후대인 조선시대에 부산에 존재했던 왜관(倭館)을 떠올려보자. 일종의 무역 상관(商館)이었던 곳으로, 본래 조선의 영토였지만 전근대적인 개념의 조차지(租借地)처럼 운영되었던 사례도 참고해볼 수 있겠다. 이외에도 여러 종류들이 있고 또 실체부터 운영방식 등 모든 면에서 달랐겠지만, 여하튼 해외에 자국의 영토를 넓은 면적이 아니라 점점이 마련하는 것은 실제로 가능했다는 역사적 실증 사례들이다.

 

그러면 물리적으로 타국의 정부가 멀쩡히 존속하던 와중에 해외에 거점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는 문제는 없었까? 답부터 하자면 물론 가능했다. 멀리 외국의 유명한 사례를 하나 찾아보자면, 중세부터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북부에서 지역의 맹주 역할을 하였던 베네치아(Venezia)를 들 수가 있다. 이름조차 백제와 발음이 비슷했던 이 나라는 해양국가답게 해외의 영토 확보에 힘을 기울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아드리아해 건너 발칸반도 서부의 해안가에 다수의 전진기지를 건설하였음은 물론 나아가 지중해 각지의 섬들을 차지하여 베네치아령으로 거느렸다. 심지어 한때는 동로마제국 비잔티움의 수도를 장악하고 라틴 제국을 세우는 초유의 일도 벌인 적이 있었다. 너무 확장하다보니 오히려 문제가 되어서 그렇지, 어쨌든 다방면에서의 무역활동을 위해 해외 영토에 자국의 거점들을 점점이 운영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를 백제로 비유하자면 동서 방향만 바꿔서, 한반도를 기점으로 하여 황해 건너 북으로는 요서 지역에 진평군, 남으로는 월주 지역, 그리고 또 남해를 건너 일본과 흑치 등 바다 각지에 거점을 마련하였다고 한다면 비슷한 형태가 아니었을까 싶다. 베네치아도 소국으로 시작하여 점차 내륙에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것처럼, 백제 역시 초기에 졸본부여에서 남천하여 마한의 일개 소국으로 정착한 다음 점차 확장하여 마한 전역을 차지하였던 것도 비슷하고 말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 Wikipedia

 

 

사족이지만, 제일 좋은 것은 물리적인 증거가 발견되는 것이겠으나 아쉽게도 백제가 해외 거점을 운영하였던 기간이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는지 혹은 멸망과 동시에 사람들과 함께 자료까지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사라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실적으로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허나 이는 이를테면 평양에 낙랑의 무덤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관련 기록은 있어도 평양에는 낙랑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고 단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여기서는 최소한 기록상으로나마 상대방이 복수의 증언을 남기고 있는 만큼 열린 자세로 이를 검증해보려고 노력하려는 자세는 기본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 참고자료 : 삼국사기, 삼국지, 주서, 송서, 양서, 남사, 수서, 구당서, 신당서, 흑치상지 묘지명, 양직공도, 입당구법순례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