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 에스페란토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feat. 에스페란토는 정말 쉬운가?)

위클리 히스토리 2026. 4. 21. 15:20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2017년작 <컨택트(Arrival)>라는 영화는 장르가 SF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원작 자체가 테드 창(Ted Chiang)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단편이기도 한데, 그것은 인류가 처음 외계인과 조우하였을 때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소재로 다룬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사실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빼고 그냥 서로 언어가 다른 지구상의 이종족을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통용되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개봉한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에도 마찬가지로 외계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인지를 다룬 부분이 나옵니다. 다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시간 제약상 너무 쉽게(?) 어휘간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좀 아쉽긴 했습니다. 주제가 외계종족간의 언어는 아니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해하고 넘어가야만 했지요.

 

 

여하튼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생각을 나누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언어학에서는 “왜” 언어가 탄생했는지, “어떻게” 언어가 발전되어 왔는지 명확하게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수전 블랙모어 (Susan Blackmore)의 경우 문화의 복제 단위로서의 밈(Meme)을 설정하고 이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언어를 상정하기도 하였었습니다. (<문화를 창조하는 새로운 복제자 밈>, 수전 블랙모어, 바다출판사, 2010)

 

 

어느 게 정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물리적 형태인 글자로 남겨지지 않은 언어 자체는 추상의 영역에 있다보니 유적으로 남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명확한 진화의 흐름을 추적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저 확인 가능한 자료를 기반으로 역추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어학의 역사에서는 ‘정답’이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언어라는 존재는 인간이라면 다들 각자 어느 정도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기준으로 다른 언어를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그 유명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만 하더라도 인간은 모름지기 보편적인 언어의 능력을 타고난다고 주장하였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본인이 접한 언어들의 공통적인 특성들이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모든 인간은 공통된 문법 능력을 “타고 나는” 것이 맞을까요?

 

여기에 작은 반기를 드는 책이 바로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입니다. 완전히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법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고 봄이 더 옳겠습니다. 그는 주류 언어학자들이 그러하였던 것과 달리, 일반적인 유럽계열 언어들이나 많이 알려져 있는 주류 언어들 외에 그보다는 마이너한 언어들에 대한 사례들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왼쪽과 오른쪽의 개념은 다분히 유럽어적인 특성이라는 것(어떤 언어에서는 자기 자신이 중심이 아닌 태양의 위치에 따른 동과 서의 개념만 있다거나), 다수 유럽어의 특징 중 하나인 단어의 성의 문제(어떤 언어에서는 아들과 딸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등), 언어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개념도 유럽어적인 개념이라는 등(어떤 언어에서는 그런 시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 어쩌면 유럽어 계열의 학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무수히 많은 다양성이 이 세상 온갖 언어들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깨우쳐줍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말에도 미래의 개념은 원래 없었습니다. “~할 것이다”로 억지스럽게 두 단어로 미래를 표현할 따름입니다(참고로 일본어에서도 현재와 미래형이 하나입니다). 왼쪽과 오른쪽도 그렇습니다. 오른쪽의 기원은 어쩌면 방향보다는 주관적 개념인 옳은 쪽이 먼저였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말에서는 색깔이나 맛, 향을 나타내는 복잡다단한 표현체계가 존재합니다. 번역가들이 이런 고유의 우리말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할 때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게 워낙에 당연한 일일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어적 “능력”은 인간이 타고났다고 할 만큼 어려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유럽계열의 화자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언어들만 접하고 보고 느끼고 살아왔다보니 자꾸 언어들의 유사성을 가정하고 세상을 바라봐서 그렇지, 그 “언어”의 공통적 특성만큼은 감히 증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게 사실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정착하게 되는 각 지역마다 그 환경 특성에 맞게 어느 정도는 적응적으로 고유의 언어를 발전시켜 나갔기에 “공통”된 형태의 언어적 특성을 주장하기에는 그 스펙트럼이 넓고도 또 광대하다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저자 자신의 이전 작품인 “Linguistic Relativity”(국내 미출간)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제목으로 이미 다 말해주는 듯합니다.)

 

우리만 해도 사돈에 팔촌까지 계산하는 게 당연(?)하다면 서양인들은 그렇게 복잡하게 친척관계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점도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 때문일 것이고, 파랗다와 푸르다처럼 마치 어원은 비슷해 보일 지라도 사실상 우리말에는 blue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도 오늘날 되새겨보면 놀라운 일입니다(순 우리말로 초록(綠)에 해당하는 다른 단어가 없다는 떠올려봅시다).

 

이 책에서 한국어판 부제로 꼽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까?”(영어 원서에서는 “How Languages Reveal Differences in How We Think”)라는 문장은 그래서 절묘하게 저자의 주장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화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정확히는 언어가 없어도 세상을 인식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겠으나, 그 언어가 있음으로 해서 그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외부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확답하기는 어려우나, 어찌되었든 언어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또 세상을 이해하는 만큼 그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일 것입니다.

 

책 자체는 무수히 많은 처음 들어보는 언어들의 사례가 등장하기에 솔직히 읽기 쉽지는 않습니다만,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해가면서 읽는다면 완독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언어 자체에 관심이 많은 덕후들께는 추천드리는 깊이 있는 책입니다.

 

 

여담입니다만, 그렇다면 에스페란토는 어떨까요? 이러한 저자의 언어 상대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과연 facila lingvo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그러긴 어려울 듯합니다. 문법이 쉽고 단어 조어가 간단하다는 것 역시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비교 대상이 유럽의 민족어들일 때에는 facila lingvo일 수 있으나, 그 역시도 여전히 relative facila한 것이 맞습니다.

 

자멘호프가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낼 때 굳이 월과 요일을 유럽식 고유명사로 다시 명명한 것은 그가 갖은 유럽인으로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비유럽인은 어찌되었든 새로 januaro부터 decembro까지 12개의 고유명사를 외워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게 영어에서 와서 외우기 편하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역시 영어를 사전에 배운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조건일 뿐입니다.)

 

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월요일(lundo)부터 일요일(dimanĉo)까지 마치 원래 그렇게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지만, 바로 이웃나라 중국만 하더라도 “싱치(星期, xīngqī)+숫자”로 요일을 표기합니다. 우리가 1월, 2월 하듯이 요일을 주1, 주2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명사를 예시로 든 것이지만, 어쨌든 언어란 결국 상대적인 것이지 결코 절대적일 수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언어 천재 자멘호프도 본질적으로 유럽 출신임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에스페란토는 (iom pli) facila eŭropa lingvo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