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와 POD 출판

위클리 히스토리 2026. 4. 8. 10:27

국내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심지어 에스페란토 책을 출간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에스페란토 전문 출판사인 진달래 출판사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 역시 자선사업을 하는 곳은 아닐 텐데 과연 크게 마진을 남기면서 사업을 하실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일반 에스페란티스토가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POD 시스템이 바로 그것입니다. Print On Demand의 약자인 주문형 출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제작을 하여 출고한다는 개념입니다. 고로 초기에 수백, 수천 권을 인쇄해야 하는 기존 대규모 투자방식에서 벗어나서 소액 소량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시스템적으로 자동화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국내에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부크크(Bookk)같은 사이트가 그렇습니다.

 

제 아이디어는 단순합니다. 수많은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각자 자신 있는 분야에 대해 에스페란토와 한글(혹은 또 다른 언어) 원고를 생산하여 지속적으로 출간을 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에스페란토의 존재를 꾸준히 각인시켜나가자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현재 인지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에스페란토의 인식 제고가 절실한 상황에서, 에스페란토 자체의 “노출”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총량을 늘려야 얻어걸리는(?) 확률도 그에 비례해서 늘어날 테니 말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아쉬운 대로 공급을 통해 수요를 간접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전략인 것입니다.

 

게다가 솔직히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저자 자신도 돈 한 푼 들지 않습니다. 다만 적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가 담보된 원고들이 우선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고, 또한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가급적 너무 길지 않은 소책자 형태의 컨텐츠를 다수 생산해내는 것이 주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시스템을 테스트해보고 있는 중인데, 해보면 해볼수록 만드는 절차 자체도 간단하고 결과물은 만족스러운 정도로 제작되기에, 나름 수준 높은 컨텐츠들만 다량 확보할 수 있다면 시도해봄직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이렇게 꾸준히 모인 원고들을 계속해서 책으로 만들어내고 각 온라인서점에 등록하여 반복 노출을 시킨다면, 분야마다 에스페란토의 존재를 조금씩 인식시키는 것까지는 어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이를테면 각 지역 도서관에 새책 신청을 하여 들여놓게 만들고, 온라인서점에는 에스페란티스토끼리 서로 책 추천하여 노출도를 높이는 식으로 말입니다. 종이책까지는 부담스럽다면 전자책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종이책보다 제작부터 구매까지 모든 절차가 훨씬 빠르고 온라인서점에서도 쉽게 검색하고 (더 저렴하게 결제하고) 즉시 다운로드해서 어디에서든 손쉽게 읽을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아래는 제가 최근 몰아서 직접 테스트로 작업해본 결과물들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저작권이 만료된 김동인(1900~1950)의 단편 역사소설을 한번 에스페란토로 옮겨본 책입니다.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등 워낙에 유명한 천재 작가이기도 한데, 그가 역사소설도 여러 편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기에 오늘날 발굴하여 새롭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전반부는 에스페란토 번역문을, 후반부는 한글 원작을 같이 실었습니다. (정가 5,800원)

 

두 번째는 조선시대 실학자인 유득공(1748~1807)의 “발해고”를 에스페란토로 옮겨본 책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발해를 독립국으로 다룬 책이기도 하지만, 또한 신라와 함께 남북국으로 병존하였다는 남북국시대론을 최초로 제시한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원작 자체가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은 접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영어로도 번역된 적 없는 이 책을 세계 최초로 에스페란토로 번역해본 것입니다. (정가 5,700원)

 

세 번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에스페란토 운동 초기에 나온 창작동화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실은 책입니다. 생각보다 경력 많은 에스페란티스토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난 에스페란토 원작들은 많이들 모르시는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종종 발굴해볼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정가 6,400원)

 

네 번째는 신데렐라 스토리야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에스페란토 초창기에 이런 번역본도 있었다는 것을 다들 잘 모른다는 사실에 한번 새로 복간하게 된 책입니다. 이 책은 이 중 유일하게 전자책으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앞의 세 책은 책가격을 최대한 다운시키기 위해 본문을 모두 흑백으로 작업하였는데, 이 책만은 한번 AI의 도움을 받아 컬러 삽화로 진행해보았습니다. 원문 자체가 분량이 적어서 제가 급하게 한글 번역문도 함께 실었는데, 내용이 짤막하여 누구나 금방 읽을 수 있습니다. (정가 1,000원)

 

참고로 POD 시스템에서는 저자가 판매가를 정할 수 있는데, 기본 제작비는 고정비라 건드릴 수 없지만 그외에 저자 마진은 극대화하든 최소화하든 각자 알아서 결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에스페란토 활성화를 위해서 마진을 제로에 수렴하게 낮추는 쪽으로 결정하였기에 위와 같은 가격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 자신의 구매 시에는 제작비에서도 추가 할인이 있으니 큰 도움이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부크크 시스템의 경우 배송비 2,500원이 추가로 붙게 되는데, 다행히 도서를 받은 다음 개인 블로그 등에 사진 찍어서 올리면 현금으로 다시 입금받을 수 있어서 참으로 유용합니다.

 

그리고 지금 준비중인 것은 우리나라 역사를 한번 에스페란토로 써보고자 싶은 마음에 원고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에스페란토 표기법상 발음의 한계가 있다보니 우리말 단어들을 기록하는 데에 여러 어려움이 있는데, 여하튼 초안 완성되는 대로 정리하여 마찬가지로 POD 출간을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어떠신가요, 저도 이렇게 하는데 저보다 더 전문가이신 여러분들이 못할 게 있겠습니까? 많은 분들의 제언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