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eranto 38

『언어의 뇌과학』, 이중언어 사용자에 대한 냉철한 분석

자신의 모국어 외에 일부러 인종이 다른 정적들의 언어를 배운 넬른 만델라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외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머리로 가고, 상대방의 언어(모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이중언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핫 이슈이다. 특히나 자신의 모국어 외에 주로 영어를 기준으로 제1외국어를 습득케 하는 데에 거의 전세계가 혈안이 되어 있다. 언어적으로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특출난 프랑스도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은 물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세계를 향해 굳이 영어(!)로 전쟁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심지어 미국과 한창 전쟁 중인 이란 역시 자국민 대상이 아닌 바깥세상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할 때는 (적국의 언어라..

에스페란토는 왜 Samideano가 필요한가

에스페란티스토가 서로를 부르는 표현이 있다. Samideano. 풀어보자면 Sama-Ideo-Ano, 즉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좋은 뜻에서 그 의미는 이해가 간다.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닌 이들끼리 모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단합하여 이 힘든(?) 세상을 이겨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용어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심적으로는 부담감이 엄습해온다. 왜 우리는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것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이 서로에게 ‘같음’을 강요해온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것을 처음으로 강요했던 대표적 사례는 고중세의 종교, 특히 일신교 사상이다. 조금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도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역사를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또한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사상이 그 ..

(신간) 어린왕자 반스 - Prince Vance & Princo Vanc'

고전 동화 중에 "Prince Vanc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자는 엘리너 퍼트넘(Eleanor Putnam)과 알로 베이츠(Arlo Bates, 1850~1918)인데, 사실 이 둘은 부부입니다. 엘리너 퍼트넘은 해리엇 베이츠(Harriet Bates, 1856~1886)의 필명입니다. 1882년에 결혼한 베이츠 부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세상은 무정하게도 아내를 만 29세의 나이에 앗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혼자가 된 남편에게 남겨진 것은 아내의 유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빛을 본 작품이 이 Prince Vance입니다. 영어로 쓰인 원작은 시간이 지나 당시 절판이 되었고, 우연히 어느 에스페란티스토의 눈에 띄어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에스페란토로 다시 쓰인 이 소설은 영..

(신간)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feat.에스페란토 배움의 이유)

은퇴를 준비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다개국어 사용자(polyglot)가 되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영어를 잘 하는 인구만 해도 10억 명이나 되니 나 하나 좀 더 잘 한다고 해서 (어차피 평생 해도 원어민만큼도 못하겠지만) 조금도 튀지 못할 테니, 기왕이면 여러 개 언어를 동시에 다룰 줄 안다면 각각은 얼마간 부족하더라도 다 합치면 그나마 희소성(?)의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버킷리스트는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나이 들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나마 젊었을 적 기초만이라도 조금씩 깨쳐둔 게 지금의 나이 치고는 발음에는 조금 도움은 되는 것도 같지만 이 또한 자..

에스페란토와 그 경쟁자들(Esperanto and Its Rivals)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다룬 책은 꽤 많습니다. 에드몽 프리바(Edmond Privat)가 에스페란토로 쓴 자멘호프 전기나 에스페란토의 역사도 그렇고, 코르젠코프(Aleksander Korzhenkov)의 자멘호프의 인생(The Life of Zamenhof)도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짧지만 깊이 있게 다룬 저작입니다. 제가 최근에 본 것은 “에스페란토와 그 경쟁자들(Esperanto and Its Rivals)”이라는 영어로 쓰인 책입니다. 총 240쪽이긴 하지만 본문은 168쪽까지여서 읽는 데 많은 부담은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출판한 곳이 흔히 유펜(UPenn)으로 약칭될 정도로 유명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라는 점입니다. 즉 일반적인(혹은 쉬운) 대중 교양서가 아니라 대학에서 직접 출간할 정도로 전..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feat. 에스페란토는 정말 쉬운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2017년작 라는 영화는 장르가 SF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원작 자체가 테드 창(Ted Chiang)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단편이기도 한데, 그것은 인류가 처음 외계인과 조우하였을 때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소재로 다룬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사실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빼고 그냥 서로 언어가 다른 지구상의 이종족을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통용되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개봉한 에도 마찬가지로 외계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인지를 다룬 부분이 나옵니다. 다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시간 제약상 너무 쉽게(?) 어휘간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좀 아쉽긴 했습니다. 주제..

(신간) 발해고(渤海考) - BALHEGO en Esperanto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渤海考)를 지으면서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짓지 않은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역사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땅을 영구히 잃어버렸다는 뜻이었지요. 그러면서 과거 통일신라로 불렀던 그 기간을 남쪽의 신라오 북쪽의 발해를 합쳐 "남북국시대"로 새롭게 명명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본이 4개 나와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인데, 한편으로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책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아무래도 옛 한문으로 지어진 책이다보니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어로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중요한 책을 세계 최초(!)로 순수 에스페란토(Esperanto)로만 번역을 한 책이 나왔습니다. 양도 많지 않아서 읽기에..

에스페란토와 POD 출판

국내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심지어 에스페란토 책을 출간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에스페란토 전문 출판사인 진달래 출판사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 역시 자선사업을 하는 곳은 아닐 텐데 과연 크게 마진을 남기면서 사업을 하실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일반 에스페란티스토가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POD 시스템이 바로 그것입니다. Print On Demand의 약자인 주문형 출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제작을 하여 출고한다는 개념입니다. 고로 초기에 수백, 수천 권을 인쇄해야 하는 기존 대규모 투자방식에서 벗어나서 소액 소량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시스템적으로 자동화하여..

에스페란토와 인지도 싸움

지금의 에스페란토는 악플도 아니고 무플 수준에 가깝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차라리 악플이 낫다고도 말하지요. 솔직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개의 그래프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왼쪽은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 검색 통계입니다. 최근 만 10년간 에스페란토를 검색하는 비중은 꾸준히 하락 추세입니다. 혹 한국만 이런가 싶어서 외국도 함께 확인해보았습니다. 그것이 오른쪽 구글트렌드입니다. 여기서도 200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검색이 감소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고 삼아 다른 주변국들의 언어 검색도 동일한 조건으로 알아봤는데, 국내는 하락 추세가 맞으나 외국까지 확대해서 보면 등락은 있을지언정 감소만 하는 언어는 딱히 없었습니다. (참고로 살짝씩 삐죽삐죽 ..

외국어가 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면 (feat.로즈아일랜드공화국)

전세계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나라는 의외로 몇 군데 없습니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정도가 우선 떠오를 텐데요. 그외에도 영어를 잘 하는 국가로는 싱가포르, 인도, 필리핀, 북유럽 여러 나라 등 더 있긴 합니다. 원래 잘 쓰던 나라는 어차피 우리의 검토대상은 아니고, 어쩌다 나중에 영어를 공용어(혹은 사실상의 공용어)로 쓰게 된 나라들이 오늘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하였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가, 한 민족이 자기 고유의 언어를 놔두고 이국의 언어를 새롭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매우 드물지만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긴 합니다. 다만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는 불행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발생합니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