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 에스페란토 16

AI 그리고 "언어 대멸종"의 시대 (feat. 에스페란토의 미래)

알파고와 이세돌, 그리고 AI와 에스페란토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이 있다. 확실히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AI가 보여주는 미래를 저널리즘적으로 잘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챗GPT가 가져온 생성형 AI의 위협 하에 이제사 내 눈 앞에서 수없이 직업이 사라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지만,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바둑계는 그러한 서늘한 현실을 이미 10년 전에 예방주사 맞듯이 미리 겪었다. 당시 무언가 쎄한 느낌을 받은 나 역시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인공지능을 마지막으로 이긴 바로 그 대국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이다. 그리고 다시는 인간은 AI를 상대로 이긴 적이 없다. 당시 세계 1위 커제도 전패하였고, 심지어 인간의 기보로 학습한 알파고는 그것 없이 혼자서 학습한 알파고 제로에게 또 ..

『언어의 뇌과학』, 이중언어 사용자에 대한 냉철한 분석

자신의 모국어 외에 일부러 인종이 다른 정적들의 언어를 배운 넬른 만델라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외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머리로 가고, 상대방의 언어(모국어)로 말하면 상대방의 가슴으로 간다. 이중언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핫 이슈이다. 특히나 자신의 모국어 외에 주로 영어를 기준으로 제1외국어를 습득케 하는 데에 거의 전세계가 혈안이 되어 있다. 언어적으로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특출난 프랑스도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은 물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세계를 향해 굳이 영어(!)로 전쟁지원을 요청하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심지어 미국과 한창 전쟁 중인 이란 역시 자국민 대상이 아닌 바깥세상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할 때는 (적국의 언어라..

에스페란토는 왜 Samideano가 필요한가

에스페란티스토가 서로를 부르는 표현이 있다. Samideano. 풀어보자면 Sama-Ideo-Ano, 즉 생각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좋은 뜻에서 그 의미는 이해가 간다. 사회적으로 주류가 아닌 이들끼리 모여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단합하여 이 힘든(?) 세상을 이겨낸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용어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심적으로는 부담감이 엄습해온다. 왜 우리는 생각이 “같아야” 한다는 것일까?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이 서로에게 ‘같음’을 강요해온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것을 처음으로 강요했던 대표적 사례는 고중세의 종교, 특히 일신교 사상이다. 조금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도 이단으로 몰아붙였던 역사를 떠올려보면 알 것이다. 또한 근현대로 넘어와서는 사상이 그 ..

어리석은 사람들(Nesaĝa Gento)

에스페란토 운동 초기에는 수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잇따랐습니다. 특히 교육, 문학, 언론 등 각 전문분야마다 자신들의 재능을 기부하는 열성적인 운동가들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럼에도 간혹 예전 기록들을 찾아보다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한 작품들도 종종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올리는 작품은 겨우 스무 살에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불과 서른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 젊은 천재 에스페란티스토 월터 존 클라크(Walter John Clark)의 우화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공부하고 활동하였던 국제적인 인재였던 그의 관점에서 초기 에스페란토 운동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낸 단편을 간단히 우리말 번역과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저 머나먼 미지의..

어린왕자 반스 (Prince Vance & Princo Vanc')

고전 동화 중에 "Prince Vanc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저자는 엘리너 퍼트넘(Eleanor Putnam)과 알로 베이츠(Arlo Bates, 1850~1918)인데, 사실 이 둘은 부부입니다. 엘리너 퍼트넘은 해리엇 베이츠(Harriet Bates, 1856~1886)의 필명입니다. 1882년에 결혼한 베이츠 부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세상은 무정하게도 아내를 만 29세의 나이에 앗아가고 맙니다. 그리고 혼자가 된 남편에게 남겨진 것은 아내의 유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빛을 본 작품이 이 Prince Vance입니다. 영어로 쓰인 원작은 시간이 지나 당시 절판이 되었고, 우연히 어느 에스페란티스토의 눈에 띄어 다시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에스페란토로 다시 쓰인 이 소설은 영..

언어는 어떻게 인간을 바꾸는가 (feat.에스페란토 배움의 이유)

은퇴를 준비하며 버킷리스트를 만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 중 하나가 다개국어 사용자(polyglot)가 되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영어를 잘 하는 인구만 해도 10억 명이나 되니 나 하나 좀 더 잘 한다고 해서 (어차피 평생 해도 원어민만큼도 못하겠지만) 조금도 튀지 못할 테니, 기왕이면 여러 개 언어를 동시에 다룰 줄 안다면 각각은 얼마간 부족하더라도 다 합치면 그나마 희소성(?)의 가치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버킷리스트는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나이 들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나마 젊었을 적 기초만이라도 조금씩 깨쳐둔 게 지금의 나이 치고는 발음에는 조금 도움은 되는 것도 같지만 이 또한 자..

에스페란토와 그 경쟁자들(Esperanto and Its Rivals)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다룬 책은 꽤 많습니다. 에드몽 프리바(Edmond Privat)가 에스페란토로 쓴 자멘호프 전기나 에스페란토의 역사도 그렇고, 코르젠코프(Aleksander Korzhenkov)의 자멘호프의 인생(The Life of Zamenhof)도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짧지만 깊이 있게 다룬 저작입니다. 제가 최근에 본 것은 “에스페란토와 그 경쟁자들(Esperanto and Its Rivals)”이라는 영어로 쓰인 책입니다. 총 240쪽이긴 하지만 본문은 168쪽까지여서 읽는 데 많은 부담은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출판한 곳이 흔히 유펜(UPenn)으로 약칭될 정도로 유명한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라는 점입니다. 즉 일반적인(혹은 쉬운) 대중 교양서가 아니라 대학에서 직접 출간할 정도로 전..

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feat. 에스페란토는 정말 쉬운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2017년작 라는 영화는 장르가 SF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언어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원작 자체가 테드 창(Ted Chiang)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단편이기도 한데, 그것은 인류가 처음 외계인과 조우하였을 때 어떻게 대화를 나눌 것인지를 소재로 다룬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사실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빼고 그냥 서로 언어가 다른 지구상의 이종족을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통용되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개봉한 에도 마찬가지로 외계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인지를 다룬 부분이 나옵니다. 다만 아무래도 영화라는 시간 제약상 너무 쉽게(?) 어휘간 공통점을 찾아가면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좀 아쉽긴 했습니다. 주제..

에스페란토와 POD 출판

국내의 열악한 출판환경에서 심지어 에스페란토 책을 출간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유일의 에스페란토 전문 출판사인 진달래 출판사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 역시 자선사업을 하는 곳은 아닐 텐데 과연 크게 마진을 남기면서 사업을 하실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일반 에스페란티스토가 책을 출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POD 시스템이 바로 그것입니다. Print On Demand의 약자인 주문형 출판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제작을 하여 출고한다는 개념입니다. 고로 초기에 수백, 수천 권을 인쇄해야 하는 기존 대규모 투자방식에서 벗어나서 소액 소량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시스템적으로 자동화하여..

에스페란토와 인지도 싸움

지금의 에스페란토는 악플도 아니고 무플 수준에 가깝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차라리 악플이 낫다고도 말하지요. 솔직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개의 그래프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왼쪽은 네이버 데이터랩에서 확인할 수 있는 키워드 검색 통계입니다. 최근 만 10년간 에스페란토를 검색하는 비중은 꾸준히 하락 추세입니다. 혹 한국만 이런가 싶어서 외국도 함께 확인해보았습니다. 그것이 오른쪽 구글트렌드입니다. 여기서도 200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검색이 감소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고 삼아 다른 주변국들의 언어 검색도 동일한 조건으로 알아봤는데, 국내는 하락 추세가 맞으나 외국까지 확대해서 보면 등락은 있을지언정 감소만 하는 언어는 딱히 없었습니다. (참고로 살짝씩 삐죽삐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