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 에스페란토

(신간) 미스터 에스페란토 (Mr. Esperanto)

위클리 히스토리 2026. 6. 24. 02:34

 

간혹 기대치 않았던 놀라움을 느끼는 경험을 누구나 해보았을 텐데, 최근에 읽은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러했다. 제목에 에스페란토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마존에서 사서 읽은 책. 생각보다 재밌었고 예상보다 짜임새도 좋았다. 결론을 스포할 수는 없으니 배경만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21세기 초에 실제 일어났던 카탈루냐 독립운동이 보여주었듯, 가상의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의 일부 지역들이 분리된다는 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중 작은 지역 네 곳이 하나의 소국으로 독립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전주민 찬반투표를 비롯해 각종 정치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 커다란 흐름이다. 이와중에 국제테러도 터지고 정치공학적 경쟁도 펼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 점차 이 신생국 노바줄(Novazul)은 어찌어찌 조금씩 방향을 잡아나가게 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신생국이었던 만큼 언어를 결정하고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 나가는지가 줄거리의 한 꼭지가 되는데, 이때 국민투표를 통해 에스페란토가 공용어로서 채택된다는 게 저자가 시도한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에스페란티스토라면 누구나 상상해봄직한 일을 저자는 가상의 소설에서나마 시도해보았기에 그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주고 싶은데, 소설 자체도 생각보다 스토리적 개연성이라든지 여러 캐릭터들간의 인간적 갈등과 복잡미묘한 관계들을 잘 묘사하고 있어서 은근히 빠져드는 묘미가 있다. 재밌는 것은, 제목 그대로 언어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만큼 인물들의 대화에도 에스페란토가 꽤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물론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소설이기에 책 자체는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 배경이 스페인인데다가 인물들도 내용상으로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고 되어 있으면서도 책은 영어로 쓰여 있으니 그것도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부분이다.)

 

책 판매에 지장을 줄 수도 있으니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영어 자체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쓰여 있어서 읽는 데 별로 지장이 없는 잘 쓴 소설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가상의 스토리이긴 하나 어쨌든 새로운 언어를 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한편으로, 또 그런 상황이 초래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사회가 그럴 수밖에 없을 만한(?) 복잡다단한 배경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에서 참으로 딜레마적인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3백 페이지가 넘는 짧지 않은 분량인데, 이만한 스토리를 과감히 POD로 출간한 저자의 용기에도 또한 박수를 쳐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