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타는 의술과 약처방에 있어 정통했다.

《삼국지》에서 기이한 인물을 뽑아본다면 물론 여럿 있지만 신비한 의술로 정사에 기록을 남긴 화타(華佗, ?~208)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에 믿기 힘든 일화들이 많다보니 과연 역사상 실존인물인지 확신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오늘날 의사라는 직업적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였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놀랍기 그지없는 그의 활약상들을 한번 정리해보자.
그는 약 처방에 정통했다고 한다. 병을 치료하려고 약을 달일 경우 불과 몇 종류의 약재만 합쳐 끓였으며, 저울도 쓰지 않고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사용하였다. 보통은 이렇게 끓인 약을 통해 병을 치료하였다. 뜸을 뜨는 경우에도 겨우 한두 곳만 정확히 예닐곱 번 뜸을 떠서 병세를 잡았다. 침을 놓을 때에도 한도 곳만 침을 놓아 병을 낫게 하였다.
솔직히 있는 그대로 믿기 힘들지만, 침이나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몸속의 질병은 마취약으로 의식을 잃게 하고는 고통 없이 절개를 하여 환부를 고치는 방식을 썼다고 한다. 예컨대 창자에 병이 있다면 창자를 잘라내고 깨끗이 봉합하였는데, 4~5일이면 통증이 사라지고 한 달이면 완쾌하였다고 한다.
어떤 부인이 임신 6개월에 복통을 호조하자 화타는 그녀의 맥을 통해 태아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약을 써서 유산을 유도하여 환자의 복통을 해결하였다고 한다.
어떤 관리는 몸에서 열이 나고 입이 마르며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또 소변도 잘 누지 못하였는데, 화타가 뜨거운 음식을 먹었을 때 땀이 나면 낫겠지만 아니면 사흘 후에 죽을 것이라고 진단을 하였다. 실제로 땀이 나지 않자, 펑펑 울어야 체내의 끊어진 기를 이을 수 있다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번은 두 명이 찾아와서 동일한 증상을 호소하였는데, 화타가 서로 다른 처방을 내려주었다. 그러자 병이 같은데 치료법이 다른 것은 왜인지 묻자 화타가 답하였다.
“한 명은 겉이 튼튼한 체질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속이 튼튼한 체질이니 마땅히 다르게 치료하는 게 맞습니다.”
그의 혜안이 느껴지는 답변이다. 그 두 명은 화타의 방법대로 하여 둘 다 완쾌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떤 사람을 보고는 화타가 건강을 물어보았는데, 그가 평상시와 똑같다고 대답하자 “위급한 병이 있는 얼굴이니 술을 많이 드시지 마세요.”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마차에서 떨어졌는데, 겨우 집에 돌아온 다음 날 죽고 말았다.
또 어떤 이는 병에서 나았는데 화타가 맥을 짚어보고는 “아직 원래대로 회복된 것이 아니니 아내와의 잠자리를 피하세요. 자칫 죽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였지만, 그는 집에 돌아가 말을 듣지 않고는 결국 병이 재발하고 말았다.
누군가는 병이 나서 다른 의사에게 침을 맞은 다음 화타에게 진찰을 받아보았는데, 화타가 “침을 위가 아니라 잘못하여 간에 찔렀군요.”라고 하면서 구하기 어렵겠다고 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작은아들이 두 살 때 병에 걸려 설사하고 툭하면 울다보니 하루하루 쇠약해져가는 사람이 찾아왔다. 화타의 진단은 이러했다.
“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양기가 막혀 있어서 아이는 어머니의 차가운 기운을 받았기에 이러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네 가지 약재를 합쳐 만든 환을 주었더니 아이는 열흘만에 기운을 차렸다.
태수의 부인이 밤에 전갈에 손을 쏘여 아파했지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화타가 탕약을 뜨럽게 데우고는 그 손을 탕약에 넣어 씻도록 했다. 그러자 부인은 곧바로 잠이 들었는데 탕약을 여러 번 바꾸면서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했다. 그 다음날 부인은 쾌차할 수 있었다.
관리 한 명이 병에 걸려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인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화타가 우연히 그 집을 지나다가 그 관리를 보게 되었다.
“저를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요. 이미 병이 심각해진 상태이니 얼른 집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남은 시간이라고는 5일뿐입니다.”
그는 그 즉시 집으로 돌아갔고 실제로 5일 후 죽고 말았다.
화타는 길을 가다가 목이 막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의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의 신음소리를 듣고는 잠시 멈추게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방금 지나온 길에 떡 파는 집에서 마늘로 만든 음식이 것이 있으니 그것을 사서 먹이면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더니 환자가 뱀 한 마리를 토해냈다고 한다. 놀란 환자가 그 뱀을 가지고 화타를 방문하였는데, 아직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 문 앞에 놀고 있던 아이가 그 뱀을 보고는 화타의 집 벽에 그런 뱀이 수십 마리 매달려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어느 태수가 병이 들었는데 화타는 그가 화를 내어야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태수에게 돈만 받고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았고, 또 태수를 욕보이는 편지를 보내 태수의 화를 크게 돋구었다. 진짜 화가 난 태수는 화타를 쫓아가 잡아 죽이도록 하였는데, 다행히 태수의 아들이 화타의 의도를 알고 있었기에 관리들을 만류시켰다. 태수는 검은 피를 토하고는 얼마 후 정말로 병이 나았다.
한 사대부가 있었는데 몸에 통증이 있다고 화타에게 진료를 요청하였다.
“병세가 심하니 배를 절개하여 환부를 도려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남은 수명은 10년쯤 되어 보이니 딱히 이 병 때문에 그 사이에 죽지는 않겠습니다.”
사대부는 고통을 참지 못하겠다고 하여 화타는 수술을 진행하였고 결국 통증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었다. 다만 10년 후 그 사대부는 예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또 다른 태수가 병이 들자 안색도 안좋아지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화타가 그런 그를 진찰하였다.
“위 속 기생충 때문에 안에서 악성 종기가 생기고 있습니다. 날것을 먹어서 생긴 일입니다.”
즉시 탕약을 만들어 복용하게 하니, 기생충을 한움큼 토해냈는데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이 병은 3년 후에 재발할 것입니다. 그때도 만약 의사를 잘 만난다면 치료할 수 있을 테고요.”
3년이 지나 병이 재발하였는데, 불행히도 이때는 화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지라 태수는 결국 죽고 말았다.
어떤 장군의 부인이 병세가 심각했으므로 화타를 불러왔다.
“유산이 되었는데 태아가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산은 맞지만 태아는 이미 떨어져 나왔는데요.”
“진맥을 보면 태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이를 장군이 믿지 않자 화타는 그냥 자리를 떠났고, 다행히 한동안 부인의 병세는 나아졌다. 하지만 100여 일이 지나 증상이 재발하자 화타를 다시 찾아왔다.
“태아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원래 아이가 쌍둥이였는데 한 아이는 유산되어 먼저 나왔지만 출혈이 많아 두 번째 아이가 미처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산모는 이를 자각하지 못했을 테고 다른 사람들도 알 리가 없으니 미처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아는 죽어 있는데 어머니의 혈맥이 태아에게 돌아가지 않으니 태아가 말라서 모체에 붙어 있기 때문에 특히 척추 통증이 심해진 것입니다. 지금 탕약과 함께 침을 놓으면 죽은 태아를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우 죽은 아이를 꺼냈는데 이미 다 자란 아이의 형체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병으로 걸을 수 없게 되어 겨우 화타를 찾아왔다. 이를 멀리서 지켜본 화타가 진맥을 해볼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는, 옷을 벗게 한 후 등에 열 군데 뜸을 떠주었고 이후 차츰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관리 한 명이 기침이 계속 나서 밤이건 낮이건 전혀 잠을 잘 수가 없고 또 피를 토할 정도였기에 화타를 찾아가 물어보았다.
“그 병은 내장에 종기가 난 것입니다. 이제 약을 2개 줄 테니, 지금 1개 먹으면 한 달이면 차도가 있고 1년이면 다시 건강해질 것입니다. 18년이 지나 한 차례 발작이 또 올 텐데, 그때 남은 약을 복용하면 병은 다시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마을에서 똑같은 병에 걸린 이가 있어서 그는 자신의 남은 약을 양보해주었다. 그런데 18년이 다 되어 병이 재발하였을 때에는 화타가 이 세상에 없었기에 이번에는 자신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럼 이제 조조의 차례이다. 조조는 화타의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들여 항상 곁에 두었다. 사실 조조는 두통으로 고생했는데 발병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화타가 침으로 횡경막을 찌르고 손을 따자 증세가 완화되었다.
조조가 국사를 처리하던 중 중병에 걸리자 화타에게 치료를 맡겼고, 이에 화타가 말했다.
“이 병은 금방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장기간 치료해야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종종 화타를 의심하였는데, 그가 명성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거나 혹 치료를 못할 것임에도 말만 그렇게 한다는 등의 생각을 가졌었다.
화타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핑계 삼아 집에 가서 약재를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조조 곁을 떠났다. 그렇게 집에 온 후에는 아내의 병을 핑계 삼아 여러 번 돌아가는 일정을 미루었다. 조조는 편지로 여러 번 그를 부르고 또 그 지역 관리에게 화타를 보내도록 요청하였지만, 화타는 과거 자유롭게 생활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했고 한편 조직에 소속되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도 컸기에 계속 회피하였다. 이에 조조는 크게 화를 내며 화타의 아내가 정말 병에 걸렸는지 보고 거짓말이라면 당장 체포하여 압송할 것을 지시하였다. 결국 버티던 화타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고 고문 끝에 결국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순욱(荀彧)이 조조에게 탄원하였다.
“화타의 탁월한 의술이 아깝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자이니 이젠 용서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조조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끝내 죽이고자 하였다. 화타도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는 자신이 갇혀 있던 감옥의 한 관리에게 자신의 의술을 적은 책 한 권을 전해주려고 하였는데, 그가 법을 어기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받지 않으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책을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그에게는 오보(吳普)와 번아(樊阿)라는 제자 두 명이 있었는데, 둘 다 100세 가까이 살았던 화타의 가르침을 받아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 90~100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책은 없어졌다지만 이렇게 그의 의술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남았다. 다만 그의 의술이 시대를 너무도 앞서간 탓에 남아 있는 일화들이 거의 신화 수준으로 신격화되어 전해지고 있으니 적절히 걸러서 들어야 하는 점만 유의하면 될 듯하다.
끝으로, 사실 화타는 처음부터 의사가 되고자 지망했던 것은 아니었다. 본래는 학문에 뜻을 두고 여러 경전을 통달하였던 선비였던 것이다. 나름 인정을 받아 효렴으로 천거를 받기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출사를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의사라는 계층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지는 못하였기에 화타 역시 일말의 창피한 감정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평범한 선비로 남기보다는 자신의 의술로 일가를 이루어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으니 어찌 보면 자칫 평범할 수도 있었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이례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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