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스토리

고대와 근대 사이, 왜 중세만 중세(中世)인가?

위클리 히스토리 2026. 8. 4. 13:39

역사를 구분짓는 가장 보편적인 틀은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라는 시대적 구분값이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기준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더 기본적이면서 누구나 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프레임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시간의 학문이기 때문에 시대로 구분하는 것보다 더 적절한 기준은 찾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잘 보면 튀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중세이다. 왜 중세만 굳이 ‘-世(세)’인 것일까? 나머진 모두 다 고대, 근대, 현대 등 ‘-代(대)’로 끝나는데 말이다. 여기에는 참으로 미묘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이러한 시대적 구분의 시초가 되는 서양의 용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선 영어에서는 각 시대를 형용사로 이렇게 부른다.

 

ancient - medieval - modern

 

각각 고대, 중세, 근대/현대에 매칭되는데, 흥미롭게도 근대와 현대의 구분이 사실 모호한 게 영어식 표현이다. early modern이나 contemporary로 명시할 수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양 관점에서는 근대와 현대가 사실상 크게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보면 오히려 근대와 현대를 명확히 구분짓는 것은 사실 동양식 사고방식이다.

 

여하튼 ‘-세’와 ‘-대’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없는 셈인데, 그렇다면 어쩌다 한자식 표현에서는 이 두 가지가 혼용되게 되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근세 일본 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당시 서양의 발전된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열성적이었던 것은 청나라의 중국도, 한반도의 조선도 아닌 오랫동안 외지에 불과했던 열도의 일본이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 여파가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동아시아 그리고 태평양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잘못된 부수적 영향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번역”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동양에 서양의 진일보한 지식과 새로운 관점을 들여오는 데 열심이었다. 그렇게 도입된 무수히 많은 한자식 용어들이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으로 사회, 경제, 민주주의, 자유, 권리 등은 모두 그들의 고심어린 번역의 결과물들이다.

 

그 과정에서 도입된 부산물 중 하나가 바로 ‘근대’이다. 물론 이 또한 일본 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긴 하나, 어쨌든 원래는 그 전까지만 해도 고대-중세-근세의 시대구분이 좀 더 일반적이었다. 즉 중세와 근세 등 ‘-세’가 기본이었고, 오히려 ‘고대’만 ‘-대’로 끝나는 게 정상이었다. (참고로 '고대'는 일본의 번역과 상관 없는 원래 있던 한자이다.)

 

하지만 재밌게도, 마치 언어에도 생물학적 진화론이 작용하듯이, 혹은 리처드 도킨스식의 밈(meme)이 문화적 진화단위로서 작동함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근세’라는 용어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근세는 시대적 구분의 뉘앙스밖에는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흥미롭게도 modern('근대적' 혹은 '현대적')이라는 무언가 참신하고 멋들어진 느낌을 주는 형용사가 사회 전반에서 사용량이 급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츰 ‘근세’와 ‘근대’ 두 단어가 진화론적(!) 경쟁을 벌이다가 자연스럽게 이미지도 상대적으로 정적이고 딱히 세련된 느낌까지는 없는 근세가 자연도태되고, 활용도가 높고 이미지도 좋은 근대가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단어간의 경쟁에서 근대가 승리를 거두게 됨으로써, 시대 구분에서조차도 고대-중세-근대-현대의 개념이 자연스럽게 정착된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바로 그 시대 구분의 용어들인 것이다.

 

< 일본에서 "근대"의 번역 과정을 잘 보여준 책으로, 역사와 언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그래서 원래 이 글의 제목은 정확히는 중세만 다른지를 질문할 것이 아니라, 왜 고대만 고대인지를 묻는 게 옳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언어 습관이라는 것은 그만큼 무섭다. 한번 정착하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것이 곧 언어 습관이다. 하나의 용어에도 이처럼 역사적 맥락과, 그리고 언뜻 상관도 없어 보이는 진화의 힘이 모두 담겨 있다. 즉 언어는 어떻게 보아도 역사와 맥이 닿는다. 내가 그 둘 다를 좋아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