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3

귀실복신(鬼室福信), 백제 부흥의 마지막 불꽃

660년 9월 5일에 백제 출신의 달솔(2품) 직급의 관리와 앳된 승려가 왜국을 찾아왔다. 이들은 바다 건너 도망쳐 와서는 고국의 사정을 왜국 정부에 다급히 알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금년 7월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왕과 신하는 모두 포로가 되었으며, 사람들도 붙잡혀 가거나 다들 흩어져버렸습니다. 이에 서부의 은솔 귀실복신은 분개하여 임사기산(任射岐山)을 차지하였고, 또 달솔 (부)여자진은 중부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에 자리잡고는 흩어진 병력을 불러 모았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랏사람들이 그들을 높여 ‘좌평(1품) 복신, 좌평 자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복신만이 신기에 가까운 무력으로 망국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귀실복신..

흑치상지(黑齒常之), 백제의 마지막 명장

660년 7월 12일, 당나라군 13만 명, 신라군 5만 명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 포위를 위해 그 앞 소부리 벌판까지 진격해왔다. 의자왕의 아들들이 당-신라 연합군 진영으로 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성을 무력으로 함락시키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굳이 항복을 받아주고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라 연합군의 거절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그날 밤 바로 태자 부여효(扶餘孝)와 극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국왕이 다른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심지어 손자마저 방치한 채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다급히 동북쪽의 군사요충지인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향했다. 당장에 포위망이 완벽..

(신간) 현진건의 흑치상지(黑齒常之)

일제강점기는 수많은 우리 선조들에게 기나긴 고난의 세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특히 젊은 지식인들에게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부터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까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작가들이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노력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그중 이광수, 김동인, 신채호 등 외에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여러 단편소설로 유명한 현진건(1900~1943) 역시 민족주의적 성향이 담긴 역사소설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책은 그의 중편소설인 "흑치상지"입니다. 당나라라는 무도한 외세에 저항하는 백제인들의 모습을 하나의 상징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풀어쓴 역사소설입니다. 미완의 책이긴 하나 중간에 흑치상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