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3

제갈량의 그림자에 가려진 방통(龐統)

인물 평가를 좋아했고 학문과 책략에서 뛰어났다 와룡봉추(臥龍鳳雛),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를 일컫는 말로 흔히 세상에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뛰어난 인재를 뜻한다. 이는 삼국지에서 유래된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각각 제갈량과 방통(龐統, 179~214)을 가리킨다. 소설 상에서는 특히 주인공격인 유비를 중심으로 띄워주기 위해 양대 천재를 거느린다는 컨셉의 소재로 활용되었지만, 소설에서든 실제 역사에서든 제갈량이라는 강한 빛에 가려진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존재로 여겨진다. 제갈량과 두 살 터울인 방통은 당대에 이미 유명한 재야 인사였다. 그는 형주(荊州)의 양양군(襄陽郡, 오늘날 후베이성 북서쪽)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는 딱히 주목을 받진 못했었지만, 스무 살 때 사마휘(司馬徽)..

제2의 제갈량을 꿈꾼 강유(姜維)

문무를 겸비하고 있고 공명을 세우고자 함이 투철했다. 228년 봄,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諸葛亮, Zhūgě Liàng)은 당대의 초강대국 위나라를 상대로 첫 북벌에 착수하였다. 당초 위나라에서는 촉나라 하면 유비만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그가 죽고나서 수년 동안 양국간 평화가 이어져 오고 있던 중 제갈량이라는 그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이끄는 촉의 대군이 진군해 오고 있다는 것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그 당시 표현으로는 관중(關中) 일대를 뒤흔들었다고 할 만큼의 이슈였는데, 실제로 위나라 최전방의 3군(郡), 즉 남안군, 안정군, 그리고 천수군의 여러 현들이 두려움에 급박하게 촉나라에 귀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마침 이 당시 천수(天水, Tiānshuǐ)태수 마준(馬遵)은 공조 ..

조조의 차세대 책사, 곽가(郭嘉)

통찰력이 있었고 전략에 능하였으며 사리분별이 뛰어났다. 《삼국지》의 실질적인 주인공 조조의 주변에는 수많은 책사가 있었다. 제갈량이 위나라의 넘쳐나는 인재를 보면서 한탄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승자의 기록이라는 편향성을 감안하더라도, 《삼국지》의 인물들을 다룬 〈열전〉의 인명수만 단순 비교해보더라도 위나라가 촉나라의 2배에 달한다. 객관적 평가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당시 알려진 인물들의 이름만 카운트 하더라도 위나라가 경쟁국가들 대비해서 훨씬 인재의 풀이 폭넓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조조에게 있어 큰 도움을 준 성공적인 인재들도 많았지만, 여러 참모진 중에서 가장 안타까움을 자아낸 젊은 천재로는 곽가(郭嘉, 170~207)를 손꼽을 수 있다. 다른 모사들이 대부분 조조와 동년배들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