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2

고구려의 평양과 낙랑군 이야기

오늘은 민감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시작하기 전에 변명부터 해보자면, 역사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다. 그저 여러 근거들에 대한 타당한 취사선택과 좀 더 합리적인 해석, 그리고 각자가 이를 기반으로 판단하고 제시하는 주장 내지 의견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직접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지 않는 한은 부득이 이 지난한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 곧 역사를 바라보는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일 것이다. 그 점을 참고하여 논의를 진행해보자. 평양에 있던 낙랑?학계에서는 고구려에 평양이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뭔가 대단한 이유나 증거가 있어서는 아니다. 현재 평양이 있던 자리에 ‘낙랑’이 있었기에 3세기에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 같은 곳에 두 ..

고구려 환도성과 평양성, 그 수도 이전의 역사

고대 삼국에서 천도를 한 번도 안한 국가는 신라 하나뿐이다. 정확히는 신문왕(神文王) 때인 689년에 달구벌(達句伐), 오늘날 대구 일대로 옮겨갈 계획을 세웠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실행까지는 되지 않았다. 즉위 직후 장인인 김흠돌(金欽突)의 난을 무사히 극복한 그는 아버지 대에 끝난 나당전쟁 이후의 신라를 안정화시키는 데에 전력을 다한 인물이다. 특히 지방행정을 정리한 공이 큰데, 서원소경(西原小京, 충북 청주)과 남원소경(南原小京, 전북 남원)을 신설한 것도 그였고, 오랜 전쟁이 끝난 만큼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고구려 유민들의 보덕국(報德國)을 해체시킨 것도 그였다. 또한 완산주(完山州)를 비롯해 청주(菁州), 웅천주(熊川州), 무진주(武珍州), 사벌주(沙伐州) 등을 설치하여 최종적으로 9주(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