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도독부 2

웅진도독부는 어디에 있었는가? (웅진/공주 vs. 부여/사비)

이름이 갖는 힘이 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났을 때 부모들도 그 이름 짓기에 나름의 공을 쏟는다. 이름 그대로 살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고려가 처음에 건국할 때 굳이 ‘고려(高麗)’라고 이름 지은 것은 그 나라가 ‘고구려’를 이어 북방 강국으로 발돋움하기를 희망해서였다. (물론 이름대로 다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재밌는 것은 이름과 실체가 따로 놀 때이다. 이런 경우도 은근히 많다. 이를테면 고대 일본, 즉 왜국의 기록을 보다 보면 한자로는 ‘唐(당)’이라 쓰고 발음은 ‘가라(から)’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해외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그 전달자인 가야(가라)를 그 당시의 선진국 당나라와 동일시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이름이 갖는 힘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는..

나당 7년전쟁(670~676), 신라와 당의 치열했던 한반도 패권 다툼

660년 백제 멸망, 663년 백제 부흥운동 실패, 668년 고구려 멸망. 7세기의 한반도는 신라가 초강대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초래한 연쇄적인 국제전으로 인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 신라가 생존을 위해 벌인 일생일대의 도박은 그 여파가 너무도 컸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고구려까지 포함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그런 의지 따위는 신라에 없었다. 이웃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대 최고 강대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당나라의 지원군은 결코 순수한 의도로 한반도의 약소국 신라를 돕기 위해 굳이 외국 영토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그 동안 골머리를 썩어온 강대국 고구려를 제압하기 위해서 그들 배후의 지원 세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