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건 2

연개소문의 아내

679년 1월 29일, 옛 고구려의 격전지 중 하나였던 요동의 신성(新城). 그곳의 요동 전역을 담당하는 안동도후부 관사에서 연개소문의 맏아들 연남생(淵男生, 634~679)이 숨을 거두었다. 이때 겨우 46세였으니 한창 때 나이였는데, 사인은 모종의 병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구려 멸망 후 9년 만에 다시 요동 땅으로 돌아와 고구려의 유민들을 통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나름 열심히 옛 고향을 위해 헌신하였지만 불과 2년 만에 눈에 띄게 악화된 건강 때문에 결국 그는 자신의 뜻을 미처 다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연남생의 사망 소식을 접한 당 황제는 다음과 같이 조서를 내렸다. 큰 공로로 상을 넘치게 받았으니, 은혜로운 임명은 생전에 흡족했으며, 후한 예우로 죽은 뒤에 추증을 하니,..

보장왕, 고구려와 발해 그 사이

668년 가을 9월, 드디어 당나라의 원정군이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포위한 지 한 달도 넘게 걸려 가까스로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원정군의 실력이라기보다는 고구려의 내부 분열이 더 큰 원인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666년에 연개소문의 세 아들 중 맏이 연남생(淵男生, 634~679)에 대항해 둘째와 셋째 아들이 평양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이번 전쟁을 야기한 근본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둘째와 셋째가 고구려의 마지막 국왕인 보장왕(寶藏王) 고장(高臧, ?~682)을 붙잡고 평양성에 틀어박혀 최후의 저항을 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평양성 포위가 한 달이 넘었을 때 이제는 패전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한 보장왕이 셋째 연남산(淵男産, 639~701)을 설득해 수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