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부흥 2

귀실복신(鬼室福信), 백제 부흥의 마지막 불꽃

660년 9월 5일에 백제 출신의 달솔(2품) 직급의 관리와 앳된 승려가 왜국을 찾아왔다. 이들은 바다 건너 도망쳐 와서는 고국의 사정을 왜국 정부에 다급히 알렸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금년 7월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왕과 신하는 모두 포로가 되었으며, 사람들도 붙잡혀 가거나 다들 흩어져버렸습니다. 이에 서부의 은솔 귀실복신은 분개하여 임사기산(任射岐山)을 차지하였고, 또 달솔 (부)여자진은 중부 구마노리성(久麻怒利城)에 자리잡고는 흩어진 병력을 불러 모았습니다. (중략) 그래서 나랏사람들이 그들을 높여 ‘좌평(1품) 복신, 좌평 자진’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복신만이 신기에 가까운 무력으로 망국을 다시 부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귀실복신..

흑치상지(黑齒常之), 백제의 마지막 명장

660년 7월 12일, 당나라군 13만 명, 신라군 5만 명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 포위를 위해 그 앞 소부리 벌판까지 진격해왔다. 의자왕의 아들들이 당-신라 연합군 진영으로 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성을 무력으로 함락시키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굳이 항복을 받아주고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라 연합군의 거절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그날 밤 바로 태자 부여효(扶餘孝)와 극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국왕이 다른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심지어 손자마저 방치한 채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다급히 동북쪽의 군사요충지인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향했다. 당장에 포위망이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