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전쟁 2

나당 7년전쟁(670~676), 신라와 당의 치열했던 한반도 패권 다툼

660년 백제 멸망, 663년 백제 부흥운동 실패, 668년 고구려 멸망. 7세기의 한반도는 신라가 초강대국 당나라를 끌어들여 초래한 연쇄적인 국제전으로 인해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 신라가 생존을 위해 벌인 일생일대의 도박은 그 여파가 너무도 컸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고구려까지 포함하여 삼국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그런 의지 따위는 신라에 없었다. 이웃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대 최고 강대국의 도움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당나라의 지원군은 결코 순수한 의도로 한반도의 약소국 신라를 돕기 위해 굳이 외국 영토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그 동안 골머리를 썩어온 강대국 고구려를 제압하기 위해서 그들 배후의 지원 세력이 필요했을 뿐이다.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

고구려의 마지막 국왕, 안승(安勝)

668년 9월의 어느 가을 날, 고구려의 평양성이 당나라 원정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이날로 고구려의 700년 대역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국가는 무너졌어도 그 구성원들까지 모두 고구려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寶藏王)의 외손이자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淵淨土)의 아들인 안승(安勝, 안순(安舜)이라고도 한다)은 불확실한 미래를 품고 자신을 따르는 고구려인 4천여 호와 함께 669년 2월 신라로 망명하였다. 기록에 따라서는 그가 보장왕의 서자(庶子)로 고안승(高安勝)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보면 그는 연안승(淵安勝)이 맞다. 아마도 큰아버지 연개소문이 역사에서는 쿠데타로 국왕을 시해한 역신으로 남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씨임을 가리고자 그저 안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