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년, 두 사신단이 당나라를 방문하였다. 한쪽은 몽골의 선조로 추정되는 실위 계통의 달구(達姤)였고, 또 하나는 달말루(達末婁)라는 생소한 이름의 국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특히 후자가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소개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고구려가 북부여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유민들은 나하(那河, 타루하(他漏河))를 건너 그 북부에 새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달구는 나하의 남쪽에 있어서 동북쪽에 위치한 달말루와 가깝게 지냈기에 이번에 함께 오게 된 것이었던 모양이다. 북부여의 공식적인 멸망 시점은 346년으로, 연나라(전연)를 세운 모용선비 세력에 의해 그 국왕과 5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끌려가는 것으로 부여의 역사는 곧 종결되었다. 부여의 수많은 후예들, 이를테면 북부여 외에도 가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