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7월 12일, 당나라군 13만 명, 신라군 5만 명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 포위를 위해 그 앞 소부리 벌판까지 진격해왔다. 의자왕의 아들들이 당-신라 연합군 진영으로 와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성을 무력으로 함락시키면 합법적으로 대량의 전리품을 거머쥘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었기에, 굳이 항복을 받아주고 그런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라 연합군의 거절 소식을 들은 의자왕은 그날 밤 바로 태자 부여효(扶餘孝)와 극소수의 측근만 데리고 사비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국왕이 다른 아들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심지어 손자마저 방치한 채 도망친 것이었다. 그는 다급히 동북쪽의 군사요충지인 웅진성(熊津城, 공주 공산성)으로 향했다. 당장에 포위망이 완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