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 8

오늘날 에스페란토와 그 현실

에스페란토(Esperanto)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한 세기도 훨씬 전인 1887년에 L. L. 자멘호프(Zamenhof)가 창안한 인공어(Constructed Language, 보통 줄여서 Conlang)입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살았던 오늘날 폴란드의 비알리스토크(Bialystok)라는 도시는 4개 민족이 동시에 거주하였던 곳으로, 당연히 언어를 비롯해 너무도 다른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 반목하기 일쑤였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자멘호프는 인류의 평화에는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간절히 느꼈고, 이를 위해 공통 언어의 필요성을 이미 진작에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에스페란토라는 언어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여러 기존 인공어들도 참고하였고, 또 고대의 공용어였던..

Semajna Historio 2026.02.23

신라와 왜(倭), 먼나라 이웃나라

의 신라본기에는 시조 박혁거세 관련하여 신기한 기사가 나온다. 왜인(倭人)이 병사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려 했는데, 시조(박혁거세)가 신령한 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 (B.C. 50년) 말도 안 되는 기사이긴 하지만 신라 초기부터 왜(倭) 즉 고대 일본과의 연관을 상징하는 내용이다.뿐만 아니다. 신라 초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아예 왜의 출신들도 은근히 있다. 석탈해(昔脫解)가 왕(尼師今)이 되었다. 이때 나이가 62세였다.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는 왜국(倭國)의 동북 1천 리에 있다.호공(瓠公)은 그 족성(族姓)을 자세히 알 수 없는데, 본래 왜인으로 처음에 박(瓠)을 허리에 차고 바다를 건너왔기에 호공이라고 칭하였다. 더욱이 왜병의 신라 침공은 역사 ..

미친 천재 혹은 독선적 독설가, 예형(禰衡)

교묘한 말과 궤변의 소유자 예형(禰衡, 173~198)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많았고 달변이었으며 의로움을 중시 여겼지만, 한편으로 꽤나 무례하고 잘난 체가 심했으며 관습을 무시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거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오늘날 산둥성 서북방 출신이었는데, 조조와 여포가 격돌하였던 즈음에 20대 초반의 차이로 형주(荊州)로 피신을 떠났다가, 한두 해 지나 안정을 되찾자 조조가 헌제(獻帝)를 맞아들여 수도로 삼았던 허도(許都) 인근을 유람하게 되었다. 예형이 처음 허도를 둘러싸고 있는 영천군(潁川郡)에 왔을 때는 허도가 새로 세워지면서 온갖 사대부들이 사방에서 모여들던 와중이었다. 어떤 사람이 예형에게 물었다. “왜 진군(陳群)이나 사마랑(司馬朗, 사마의의 형)을 찾아보지 않습니까?” ..

넘치는 재치로 자신의 운명을 그르친 천재, 양수(楊修)

한나라의 명문가 출신인 양수(楊修, 175~219)는 어릴 적부터 영리하고 글 읽기는 좋아했다고 한다. 성장해서는 승상 조조의 주부 즉 비서가 되었는데, 그와 조조 간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 여럿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조조가 공사 중인 동작대를 시찰하러 나섰다가 문 앞에 멈추어 살펴보더니 그 자리에 글자 하나를 적었다. 바로 “활(活)”이었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양수는 곧바로 조조의 뜻을 눈치채고는 문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해석해주었다. 이 또한 무슨 뜻인가 싶어 하는 이들에게 양수가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였다. “문(門) 사이에 활(活) 자가 있으면 곧 넓다는 뜻의 “활(闊)” 자가 됩니다. 즉 승상께서는 문이 너무 넓다고 하신 것입니다.” ..

권력 투쟁에서 밀린 비운의 천재, 조식(曹植)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서 후세까지 이름을 남겼지만,겸손하지 않은 탓에 기회를 잃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 조조는 아들만 25명을 낳은 삼국지 속 다산의 상징적 존재이다. 난봉꾼 기질이 다분했던 그가 그 여러 부인들 중 가장 사랑하고 개인적으로 존중하였던 인물은 무선황후(武宣皇后) 변씨(卞氏, 160~230)였다. 본처가 있었던 조조는 다섯 살 터울의 그녀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80년에 첩으로 먼저 받아들이는데, 이후 오랫동안 그녀의 현명한 처사를 눈여겨 보고는 기존의 본처를 쫓아내고 그녀를 정실로 삼게 된다. 조조와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는 조비, 조창, 조식, 조웅의 네 명이 있었다. 조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한나라 황제의 자리까지 찬탈하게 되는 조비(曹丕, 187~..

발해와 요동반도

발해가 요동반도를 차지하지 못하였다는 주장들이 있다. 한번 그 근거가 되는 것들부터 살펴보고 넘어가보자. 가탐(賈耽)의 지리 기록가탐은 8세기 후반에 활동한 당나라의 관료였다. 고구려 유민인 왕사례(王思禮)와도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관료로서의 업적보다는 개인적으로 지리학을 무척 좋아해서 관련된 지리책과 지도까지 편찬하였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저작은 없지만 다행히 의 지리지에 그의 글이 다수 남아 있다. 그렇게 우연찮게 발해에 대한 지리 정보도 그의 글을 통해 일부가 전해진다. 등주(登州, 산동반도 동북쪽 끝)에서 동북쪽 바닷길로 압록강 하구에 이른다. 배를 타고 1백여 리를 가서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리를 거슬러 올라가 박작구(泊勺口)에 도착하니 발해의..

백미(白眉)의 동생이자 읍참(泣斬)의 주인공 마속(馬謖)

걸출한 재능이 있었고 군사 전략에 밝았지만, 말보다 실제가 부풀려진 인물 어떤 인물이 사자성어 속 주인공이 되거나 혹은 보통명사화되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주 드물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긴 하다. 《삼국지》에 나오는 백미(白眉)라는 고사의 형제들이 바로 그 사례이다. 백미는 글자 그대로는 단순히 ‘흰 눈썹’이라는 뜻인데, 오늘날 사전적 정의는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 배경은 이렇다. 당시 양양군 의성현(宜城縣)에서는 마(馬)씨 집안의 다섯 형제가 재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는데, 그 중에서도 눈썹에 흰 털이 나 있던 마량(馬良, Mǎ Liáng, 187~222)이 제일이라고 해서 흔히들 ‘백미’가 바로 그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