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천재들

조조의 천재 아들, 조충(曹沖)

위클리 히스토리 2026. 1. 21. 10:44
그 아이가 죽은 것은 나에게는 불행이지만 너희에게는 행운이겠구나.

 

 

   조조(曹操)는 슬하에 아들만 25명이나 되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 제국을 건국한 조비(曹丕)와 그와 치열한 왕위 경쟁을 벌였던 동생 조식(曹植)이 아무래도 가장 유명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의 동복 형제였던 조창(曹彰)도 장군으로서 명성을 떨쳤고, 또 조조가 장수(張繡)를 토벌하러 갔을 당시 아버지를 수행하던 중 대신 목숨을 잃었던 조앙(曹昻)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럼 그 많은 자식들 중 가장 똑똑했던 아들은 누구였을까? 학문적으로는 그 수준이 조식에 가까웠다는 조곤(曹袞)도 있긴 하나, 아무래도 “천재 요절”이라는 신화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인물로는 조충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조충(曹沖, 196~208)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과 지혜가 뛰어나서 이미 대여섯 살 때에 왠만한 어른을 뛰어넘는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그에 대한 일화가 일부 전해진다.

 

   어느 날 오나라의 손권(孫權)이 조조에게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로 보내왔는데, 조조도 이러한 선물은 처음인지라 그 코끼리를 보자마자 얼마나 무거운 동물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다들 대답을 못하고 어물쩡 거리고 있을 때 어린 조충이 나서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했다.

 

   “코끼리를 배에 실은 다음 가라앉는 만큼을 배에 표시하고, 다시 다른 물건들을 실어 똑같이 재어보면 그 무게를 확인할 수가 있겠습니다.”

 

   나름 꾀돌이로 유명했던 조조조차도 이 아들의 똑똑함에는 무릎을 쳤다고 한다.

 

   보통 천재는 자기중심적으로 주위를 잘 살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신동이었던 조충이 그저 두뇌회전이 좋기만 한 오롯이 자기만 아는 천재는 아니었다. 심지어 당시 최고형이었던 사형을 받을 처지의 인물들도 조충이 나름 억울한 사정이 있는지 파악하여 보고는 나름 손을 써서 면책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경우도 수십 번이었다고 한다. 또한 적극적으로 미션을 수행하다가 부득이 업무상 과실이 발생한 경우에도 그가 나서서 조조에게 청하여 처분을 줄여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 번은 조조의 말안장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마침 쥐가 그 안장을 갉아먹는 바람에 그 창고의 관리자는 업무 소홀의 책임으로 처형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온갖 고민 끝에 달리 방도가 없으니 결국 자수하려고 나섰는데, 이를 알게 된 조충이 그에게 언질을 해주었다.

 

   “지금은 잠시 기다렸다가 사흘 후에 자수를 하세요.”

 

   그리고는 자기 옷을 뜯어 쥐가 갉아먹은 것처럼 만들고는 일부러 상심한 양 연기를 했다. 이를 본 조조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조충은 이와 같이 답했다.

 

   “듣기로는 쥐가 옷을 갉아먹으면 그 옷 주인에게는 안 좋은 일이 생긴다던데, 제 옷이 그렇게 되었으니 당연히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조조는 그런 건 별 일 아니라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얼마 후 창고 관리자가 조조를 찾아가 쥐가 나타나 말안장을 갉아먹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자 조조가 웃으며 대꾸했다.

 

   “내 아들도 입고 있던 옷이 쥐에 물어뜯길 정도인데, 창고 안의 말안장이야 어쩔 도리가 있었겠나.”

 

   조충의 작은 꾀 덕분에 이 일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질 일은 없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평가로는 어려서 벌써 시시비비를 가리는 능력이 탁월했고, 인간적인 배려심도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예쁘고 잘생겨서 그랬는지 조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조조가 자신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로까지 조충을 염두에 두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천재 요절의 운명은 누구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조충이 불과 열세 살의 나이에 병에 걸려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자 조조는 크게 슬퍼했다. 이보다 얼마 전에 당대 최고의 의사였던 화타(華佗, ?~208)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게 다름 아닌 바로 조조였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병으로 위독해지자 자연히 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화타를 죽인 것이 후회가 되는구나. 내가 이 아이를 죽게 만든 셈이다!”

 

   아버지가 너무 상심해 하자 큰아들 조비가 그를 위로했을 때 조조가 했던 말이 남아 있다.

 

   “그 아이가 죽은 것은 나에게는 불행이지만 너희에게는 경쟁상대가 없어진 거니 행운일 테지.”

 

큰 형 조비

 

   역사에 가정이란 없는 법이니 커서도 과연 계속 그 천재성을 유지했을지 아니면 대다수 신동들의 경우처럼 결국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지, 혹은 그 역시 변화를 겪어 또 다른 개성의 인물로 성장했을지는 아무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천재 아들의 때이른 죽음으로 잠재적 경쟁자들이었던 형들에게 왕위 게승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때의 아버지의 말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조비도 나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까지 조충이 살았더라면 나에게 과연 천하의 대권을 쥘 기회가 왔었을까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