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탐방

연천 고구려성 여행 -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

위클리 히스토리 2026. 10. 7. 17:32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역사탐방이다. 주로 박물관을 대상으로 삼긴 하지만, 당연히 그 지역의 주요 유적지도 항상 들른다. 이번 연휴 때는 경기도 연천, 곧 DMZ 바로 아래의 임진강 루트를 따라 고구려 성들을 목적지로 삼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한 쪽에는 고구려의 유적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남쪽 국경선 자체가 남한 땅 아래까지 그렇게 많이 밀고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주에서 광개토대왕의 호우그릇이나 충주에서 장수왕의 고구려비가 발견되기도 하긴 했지만, 오히려 역사적으로는 드문 케이스이다.


다만 남한에서도 고구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은 다행히 일부 남아 있다. 바로 연천이다. 여기에는 가장 유명한 호로고루도 있고, 그보다는 덜 유명한 당포성, 그리고 아직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은대리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세 곳을 중심으로 그외에도 연천에 들르는 김에 함께 방문할 만한 곳들을 다음과 같이 뽑아서 일정을 짜보았다.

①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  ② 경순왕릉  ③ 호로고루  ④ 칠중성  ⑤ 숭의전  ⑥ 당포성  ⑦ 은대리성  ⑧ 전곡선사박물관

 

우선 고랑포구는 엄밀히 말해 고구려 유적지는 아니다. 역사공원 내에 있는 전시관을 둘러봐도 주로 근대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대신 아이가 있다면 이것저것 다양한 VR 체험을 하기 좋고 2층의 키즈카페에 들러 한참 뛰어놀게 하기 좋은 그런 공간이다.

 

빠르게 둘러보고 바로 이웃에 있는 경순왕릉을 들러보았다. 신라의 경순왕 자체는 그래도 좀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서 관광객들도 꽤 방문하는 곳인데, 현재는 능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여기저기 있는 지뢰 경고문을 보다보면 딱히 주변을 깊이 탐색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긴 한다.) 이곳은 볼거리가 많진 않지만 대신에 해설사의 설명을 청해 들어보면 나름의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들어볼 수가 있어서 그게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참고로 경순왕릉비로 추정되는 신도비가 있는데, 기록만 봐서는 경순왕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경순왕릉

 

그 다음은 가까운 호로고구 차례이다. 이번에 첫 번째 들르는 고구려성이다. 신비롭게도 한번 가까이 다다가서 잠깐 올라가만 봐도 정확히 임진강을 내려다보는 감시초소와도 같은 국경 수비성임을 단박에 알아볼 수가 있다. 성벽을 지나 마치 기다란 함선처럼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성 내부를 둘러보다 보면, 그 주변이 모두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자연 방어막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임진강이 삼국시대 당시 실질적인 국경선 역할을 하였음이 딱 느껴지는 곳이다.

 

호로고루 전경. 강을 따라 생긴 삼각형 모양의 성터가 눈에 띈다.

 

여담이지만 이곳 주차장 바로 입구에 뜬금없게도 북한에서 보내준 광개토왕릉비(replica)가 세워져 있다. 당연히 관계가 한창 좋을 때 보내준 것인데, 아무리 북한에서 만들어준 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생뚱맞은 곳에 굳이 세워놨어야 하는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다. 상당히 규모 있게 잘 만든 것인데, 기왕이면 보다 보기 좋은 곳으로 옮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곳이 바로 당포성과 은대리성이다. 이 둘 다 생김새도 호로고루와 거의 비슷하게 닮아 있고, 임진강을 끼고 경계와 방비를 담당하는 그런 최적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은대리성은 정확히는 한탄강 지류에 있긴 하다.) 아마도 강을 따라서 고구려에서는 남쪽의 적국들을 감시하면서 동시에 공격해 내려갈 수 있는 최전선의 기지를 세웠던 것이리라.

 

당포성의 성벽
은대리성의 성문

 

참고로 당포성은 호로고구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광지화되어 있어서 관광객이 어느 정도 오는 곳인데, 은대리성은 아직 그런 개발은 되어 있지 않아서 한적하기 그지 없다.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니 좋긴 하였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심지어 찾아가려면 연천군 보건의료원의 오른쪽 주차장 진입로로 들어간 다음에야 보이기 때문에, 자칫 입구도 못 찾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당포성 가는 길에 중간에 칠중성도 잠깐 들렀다. 사실 여긴 연천은 아니고 행정구역상으로는 파주에 속하지만, 어쨌든 임진강 너머에 바로 있기 때문에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해발 140여 미터로 그리 높지 않고 정상까지 비포장이긴 해도 길이 나 있기 때문에 한번 올라가볼 수도 있다. 그렇게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이곳 역시 임진강을 감시하는 최전방 초소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눈에 임진강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적성향교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물을 돌아 쭉 정상으로 올라가면 된다. (이곳이 칠중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기에서 칠(七)자가 새겨진 기와가 나와서 그렇게 비정된 것이다.)

 

칠중성 전경

 

지금까지는 삼국시대의 유적이었다고 하면 그 사이에 들른 숭의전은 고려시대의 국왕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즉 정확히는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만든 건물이어서 고려의 유적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위패를 상시 개방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막상 찾아가도 마땅히 볼 만한 게 없을 수도 있다. 대신 건물을 돌아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변 풍경을 구경하기 좋은 전망대가 있으니 한번쯤은 들를 만하다.

 

숭의전 전경

 

끝으로 들른 곳은 전곡선사박물관이었다. 건물 하나는 기가 막히게 멋지게 지은 곳인데, 살짝 아쉬운 것은 내부의 전시가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선사시대의 삶을 최대한 복원한 것은 나름 의미도 있고 괜찮았지만 그외에는 건물 대비 유물의 절대량이 턱없이 부족한 게 안타까웠다. 대신 주변 환경은 너무도 잘 갖춰져 있으니 산책 삼아서라도 가볼 만은 하다.

 

연천군의 안내지 (발췌)

 

돌아가는 길에 숙소는 포천의 아도니스 호텔로 잡았는데, 방도 깨끗하고 꽤 넓직하고 2층의 전시실도 멋있고 다 좋았는데, 아무래도 건물 자체의 시대의 흔적만큼 노후화된 모습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 방문하였을 때에는 아도니스 호텔의 명문이었던 커다란 정원이 리모델링 중이어서 그곳도 즐기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직원분도 친절하고 방 자체는 훌륭해서 하루 정도 묵을 만한 곳이었다.

 

(* 은대리성만 별도로 관광안내소가 없어서 리플렛도 구할 수가 없었다.)